인신매매

인신매매

[ 人身賣買 ]

요약 사람을 물건처럼 매매함으로써 타인에 대하여 예속적인 상태에 두는 일.

노예나 창녀 등의 예가 그것이다. 가장 비인도적인 범죄행위로서 지금은 국제적으로도 금지되고 있는 인신매매는 고대에서의 노예제의 지배, 중세에서의 화폐경제의 발달 속에서 그 오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노예의 집중적인 노동력은 미개사회에서의 중요한 생산수단이었으며,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원시공산사회의 공유물이었던 가내노예(家內奴隸)의 사유화가 진전되어 증여 ·매매 ·상속의 대상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광산의 발굴이나 올리브 ·포도의 재배에 종사할 노동노예의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노예의 상품화가 더욱 촉진되었다. 노예의 공급원으로는 피정복종족이나 전쟁포로 외에 빚을 갚지 못하는 자유민, 납세를 위해 가장이 파는 가족, 약취 ·유괴된 부녀자 등이 추가되어갔다. 아프리카의 흑인을 최초로 노예화한 것은 사라센 상인이라 하나, 15세기 후반 포르투갈 상인이 흑인노예를 유럽 궁정에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유럽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은 이 식민지적인 노예노동을 통해 강행되었으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해적상인들은 노예무역으로 거금을 거두어들였다. 그들에 의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미국시장으로 팔려 간 흑인노예는 300년간에 1500만 명에 달했다고 추계되고 있다. 아시아의 인도나 중국에서도 노예의 인신매매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 또한 ‘기자 8조 금법(箕子八條禁法)’에 “도둑질을 한 자는 남자는 가노(家奴), 여자는 비(婢)로 삼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조선시대부터 노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노비는 사회의 복잡화에 따라 수가 많아졌고, 끝내는 가산으로 파악되기에 이르러 그 상속 ·매매가 허용되었다. 그리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사천조(刑典私賤條)>에는 노비의 봉급에 관한 규정이 있는가 하면 <호전매매한조(戶典賣買限條)>에는 노비를 매매한 후 100일 이내에 관부에 신고하여 증명서를 발급받도록 되어 있었다. 노비 이외의 인신매매는 금지되며, 그 매도인을 처벌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대명률 형률 약인약취조), 자신을 파는 매매도 금지되어 있었다(형전금제조).

그러나 흉년을 당하거나 난리를 만난 경우에는 생활이 어렵게 되어 노비 이외의 일반인을 파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매매되는 것은 처나 자녀가 보통이었고, 매매되면 매수인의 노비가 되었다. 인신매매는 영구적 매매(永久的賣買)에 의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일정한 기간 동안만 고용살이를 하는 유기적 매매(有期的賣買)도 있었다. 이와 같은 인신매매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말기까지 계속되었는데 1894년 6월 “모든 공노비 ·사노비제도를 폐지하고 인신매매를 금한다”는 의안이 발표됨으로써 노비제도 내지 인신매매는 불법화되었다.

현행 법제에 비추어 보면 헌법에는 모든 국민의 기본인권이 보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민법에서는 인신매매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것으로 무효라 규정하고 있으며(103조), 형법에서는 추행, 간음, 결혼,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한 사람을 처벌(289조)하고 있다. 국제협약으로서는 ‘인신매매금지 및 타인의 매춘행위에 의한 착취금지에 관한 협약’(1962.4.9. 조약 93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