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

이차돈

[ 異次頓 ]

요약 신라의 승려로 한국 불교사상 최초의 순교자이다. 그가 죽은 뒤 일어난 기적이 조신들의 마음을 돌려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었다.
출생-사망 502/506 ~ 527
별칭 거차돈·처도, 자 염촉·염도
활동분야 종교

자는 염촉(厭觸), 염도(厭都), 거차돈(居次頓), 처도(處道)라고 했다.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증손이며 속성 박(朴)씨이다. 법흥왕의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근신(近臣)으로서 벼슬은 내사사인(內史舍人)이었다.

당시 법흥왕은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삼아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재래의 토착신앙을 신봉하는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이차돈은 신하들의 의견에 반대하여, 불교의 공인(公認)을 주장하였다. 527년 순교(殉敎)를 자청하고 나서 만일 부처가 있다면 자기가 죽은 뒤 반드시 이적(異蹟)이 있으리라고 예언하였다. 예언대로 그의 잘린 목에서 흰 피가 나오고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꽃비가 내리는 기적이 일어나 신하들도 마음을 돌렸고 마침내 527년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공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산(北山)의 서령(西嶺:金剛山)에서 이차돈의 장사를 지내고 이차돈의 명복을 비는 자추사(刺楸寺)를 건립하였다. 순교 당시 이차돈의 나이는 약 22~26세 정도로 추정된다. 이 사건으로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가 544년에 완공되었다. 817년(헌덕왕 9) 국통(國統)·혜륭(惠隆) 등이 그의 무덤을 만들고 비를 세웠으며 이차돈의 순교를 기록하는 6각 석당을 경주 백률사에 세웠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이차돈이 528년(법흥왕 15)에 순교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는 《삼국사기》를 인용하면서도 527년(법흥왕 14)에 순교한 것으로 적혀 있다. 출생연도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흥법(興法)>편에만 실려 있는데,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에는 순교할 때 이차돈의 나이가 26세로 적혀있는 반면, 일념(一念)이 지은 <촉향분례불결사문(香墳禮佛結社文)>에는 22세라고 적혀 있어 차이가 있다. <아도비>를 따르면 이차돈이 태어난 해는 502년 무렵이 되고, <촉향분례불결사문>을 따르면 506년으로 추산할 수 있다.  

참조항목

공한, 백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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