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

이인상

[ 李麟祥 ]

요약 조선 후기의 서화가. 시·서·화에 능해 삼절(三絶)이라 했고, 그림에는 산수(山水), 글씨에는 전서(篆書)·주서(籒書)에 뛰어났으며, 인장(印章)도 잘 새겼다. 저서에《능호집》, 그림에 《설송도(雪松圖)》, 《노송도(老松圖)》, 《산수도(山水圖)》등이 있고, 글씨에 《대사성김식표(大司成金湜表)》가 전한다.
출생-사망 1710.4.26 ~ 1760.8.15
본관 전주
원령(元靈)
능호(凌壺)·보산자(寶山子)
국적 조선
활동분야 서화
출생지 경기도 양주군
주요저서 《능호집》
주요작품 《설송도(雪松圖)》 《노송도(老松圖)》 《산수도(山水圖)》 등
시대 조선시대

본관 전주(全州), 자 원령(元靈), 호는 능호(凌壺)·보산자(寶山子)이다. 1710년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 보산자는 천보산(天寶山)에서 따왔다. 천보산에는 고려의 명찰인 회암사가 있었고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대제학을 지낸 명문가문 출신이었고 부친 이정지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그의 증조부가 서자(庶子)였다. 1735년(영조 11)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서자였기 때문에 더이상 본과에 나아가지 못했다. 음직(蔭職)으로 북부참봉(北部參奉)을 지냈고 2년 뒤 음죽현감(陰竹縣監)이 되었으나 뒤에 관찰사와의 불화로 사직하여 설성(현 음성)에 종강모루(鐘岡茅樓)라는 정자를 짓고 칩거하였다. 시·서·화에 능해 삼절(三絶)이라 했고, 그림에는 문인화풍의 담담한 산수(山水)화를 즐겨 그렸고, 글씨에는 전서(篆書)·주서(籒書)에 뛰어났는데, 특히 그의 전서체는 서툴고 허전해 보이는 글씨인듯하면서 아름다운 필력을 보여주는 독특한 그만의 기질이 잘 나타나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인장(印章)도 잘 새겼으며 최고의 솜씨라고 회자되었다. 1760년 5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고 부인과 합장되었다.

저서에《능호집》, 그림에 《설송도(雪松圖)》 《노송도(老松圖)》 《산수도(山水圖)》 《옥류동도(玉流洞圖)》 《검선도(劍仙圖)》 《송석도(松石圖)》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한림수석도(寒林秀石圖)》 등이 있고, 글씨에 《대사성김식표(大司成金湜表)》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