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

이계남

[ 李季男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평원군에 봉해졌다. 국가의 재정을 잘 운영하였다는 평을 받았으나, 욕심이 많아 관직을 이용하여 재물을 모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출생-사망 ? ~ 1512
본관 평창(平昌)
자걸(子傑)
휴휴당(休休堂), 익평(翼平)
활동분야 정치

본관 평창(平昌). 자 자걸(子傑). 호 휴휴당(休休堂). 시호 익평(翼平). 문음(門蔭)으로 입사하여 1468년(예종 즉위) 감찰에 임명되고, 풍덕군수(豊德郡守)로 나가 토호(土豪)들의 횡포를 막는 등 선정을 쌓았다. 1479년(성종 10) 지평을 거쳐, 1486년 사헌부집의 ·우부승지 ·우승지를 지냈다. 1489년 좌승지 ·이조참의, 이듬해 호조참의를 지냈다. 1491년 충청도관찰사로 임명되었을 때 장령 이거(李琚)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92년 중추부동지사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3년 경상도관찰사 한성부우윤,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를 지냈다. 1496년(연산군 2) 호조참판 ·대사헌을 거쳐 의금부당상으로 있을 때, 연산군의 명을 어겨 곤장을 맞기도 하였다.

1501년 공조참판, 1504년 호조판서를 지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평원군(平原君)에 봉해졌다. 1511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국가의 재정을 잘 운영하였다는 평을 받았으나, 욕심이 많아 관직을 이용하여 재물을 모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역참조항목

평창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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