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

유구

요약 고려 말 경상도안렴사, 밀직부사 등을 지냈고 창왕을 죽이는 등 이성계 세력으로 활동하여 조선이 건국된 후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다.
출생-사망 1335 ~ 1398
본관 진양(晉陽)
시호 정평(靖平)
주요수상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본관은 진양(晉陽). 시호는 정평(靖平).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혜방(惠方)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어사가 되었고,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이 침략하여 공민왕이 남쪽으로 피난하자 이천(利川) 농장에서 왕을 극진히 접대하였다. 이를 계기로 승진하기 시작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373년에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로서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가 되었다. 1380년(우왕 6)에 밀직부사가 되었고, 1389년(공양왕 1)에 이성계 세력의 일원이 되어 예문관대제학으로서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던 창왕을 죽였고, 다음 해에 양광도도관찰사(楊廣道都觀察使)가 되어 사전개혁을 위한 양전(量田)을 실시하였다. 조선이 건국한 후 1392년(태조 1)에 완산부윤(完山府尹)이 되었으며, 1395년에 정당문학 참찬문하부사(政堂文學參贊門下府事)를 역임하였다. 이 해에 원종공신으로서 진표사(進表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는데 표전문(表箋文)의 글귀가 문제가 있다고 하여 억류되었다가 다음 해 겨울에 귀국하였다. 1397년에 상서우복야 예문춘추관대학사가 되었고, 다음해에 죽었다.

참조항목

공민왕, 태조

역참조항목

정신의, 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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