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타 히데이에

우키타 히데이에

[ 宇喜多秀家(우희다수가) ]

요약 일본의 무장(武將).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로 시코쿠, 규슈, 오다와라 정벌 등에 큰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정유재란 때는 침략군의 감군으로 조선에 침입했다.
원어명 うきた ひでいえ
출생-사망 1573 ~ 1655
국적 일본
활동분야 군사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부하로 1585년의 시코쿠[四國] 정벌, 1587년의 규슈[九州] 정벌, 1590년의 오다와라[小田原] 정벌 등에 큰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1592) ·정유재란(1597) 때는 침략군의 감군(監軍)으로서 조선에 침입해 왔다. 즉, 1592년(선조25)에 왜군의 제8진 1만 명을 이끌고 침입, 서울에 입성하여 왜군이 북진한 뒤의 서울 수비를 담당, 이듬해 행주(幸州) 싸움에서 권율(權慄) 장군에게 대패했을 때 부상을 당하고 철군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도 왜군의 제2진을 이끌고 내침, 남원(南原) ·전주(全州)를 점령하였으나, 소사평(素砂坪) ·명량(鳴梁) 싸움에서 일본군이 대패하자 퇴각했다. 히데요시의 신임이 두터워 다섯 다이로[五大老]의 한 사람이 되었으나, 1600년의 세키가하라[關原] 싸움에 서군(西軍:豊臣軍)의 중심 전력으로 출전했다가 대패하여 1606년 하치조섬[八丈島]에 약 50년간 유폐되었다가 죽었다.

참조항목

행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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