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거인

왕거인

[ 王巨仁 ]

요약 6두품(六頭品) 출신의 지식인으로 신라말기 문인. 당시 사회모순을 초래한 진골(眞骨)귀족들의 족벌정치(族閥政治)와 골품제도(骨品制度)를 비판하다가 탄압을 받아 축출되었다.
출생-사망 ? ~ ?

지금의 합천인 대야주(大耶州)에 은거해 있었는데, 신라 하대의 모순으로 사회가 혼란하던 888년(진성여왕 2)에 누군가 왕실을 비난하는 글을 대로에 게시한 사건이 일어나자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이 괘서는 불경주어(佛經呪語)인 다라니어(陀羅尼語)로 쓰여졌는데 진성여왕이 곧 사람을 시켜 수색하였으나 잡지 못하자, 어떤 자가 나서서 그것은 뜻을 잃은 문인(文人)이 한 것이니 대야주의 은자(隱者)인 왕거인이 아닐까라고 하였다.

왕이 체포하여 형벌을 가하려고 하는데 분하고 원통하여 감옥의 벽에, “우공(于公)이 통곡하니 3년 동안 날이 가물었고, 추연(鄒衍)이 슬픔을 품으니 5월에도 서리가 내렸다. 지금 이 내 근심도 예나 다름이 없는데 황천(皇天)은 아무 말도 없이 창창할 뿐이로구나”라고 썼다. 그날 저녁에 홀연히 구름과 안개가 끼고 벼락이 치고 우박이 쏟아졌으므로, 왕이 두려워하여 풀어주었다고도 하고, 하늘이 감옥에 벼락을 쳐서 풀려나게 되었다고도 한다. 더 자세한 사정은 전해지지 않으나, 6두품(六頭品)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당시 사회모순을 초래한 진골(眞骨)귀족들의 족벌정치(族閥政治)와 골품제도(骨品制度)를 비판하다가 탄압을 받아 축출된 인물이라고 설명된다.

참조항목

분원시, 진성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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