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사건

5·30사건

[ 五三十事件 ]

요약 1925년 5월 30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민중운동.

1925년 2월, 일본인이 운영하는 방적공장인 나이가이면주식회사[內外綿株式會社]에서 중국인 여자 노동자 학대가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후 노동자 근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 일어났다. 4월에는 칭다오[靑島]의 일본인 공장에 파급되었다. 5월에 이르자 일본 군함이 칭다오에 출동, 유혈사태를 빚고, 노동항쟁은 다시 상하이로 퍼져 나이가이면방적공장을 중심으로 파업이 재발, 이에 맞서 일본인 경영자들은 일제히 공장을 폐쇄하였다.

이에 항의한 노동자들에 대해 상하이 조계(租界)의 공부국 소속 인도인 경찰관이 발포,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하였다. 이 사건은 학생을 비롯한 민중운동으로 번져 일본영사의 요구에 따라 공부국은 체포를 강행, 5월 30일 재판에 회부하였다. 그러나 무죄가 된 한 학생을 석방하지 않아 이에 항의한 학생을 체포하자 1만 명에 이르는 민중이 공부국에서 시위를 하였다. 이에 영국인 경부(警部)의 명령으로 인도인 경관이 발포, 13명이 사망, 15명이 부상하고 53명이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중국인에게 큰 충격을 주어 31일에는 상하이의 노동자 20만 명 이상이 상하이 총공회(總工會)를 조직하고 6월 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어 학생도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상인들도 폐점파업에 참여하여 7일에는 그 중심기구로서 상하이 공상학연합회(工商學聯合會)가 결성되었다.

6월 초 일본 ·미국 ·이탈리아 등은 육전대(陸戰隊)를, 영국은 육군을 파견해서 이 운동에 탄압을 가하는 한편 중소자본가(中小資本家)에 대한 분열정책을 행하였다. 상하이의 총파업은 8월 말에 끝났으나 베이징[北京] ·난징[南京] ·톈진 ·우한[武漢]까지 파급되었고 특히 광저우[廣州] ·홍콩[香港]에서는 1년 반에 걸쳐 투쟁이 전개되어 반제국주의의 의식을 민중에게 깊이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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