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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소연(蕭衍)이 세운 중국 남조(南朝)의 제3왕조(502~557).

소량(蕭梁)이라고도 한다. 남제(南齊) 말 내란이 일어나자 옹주자사(雍州刺史) 소연은 501년 건강(建康:南京)을 공략, 폭군 동혼후(東昏侯)를 퇴위시키고 남강왕(南康王)을 화제(和帝)로 추대하여 스스로는 상국(相國)이 되었으나, 502년 화제를 선양(禪讓)받아 제위[武帝]에 오르고 국호를 양이라 하였다. 무제가 다스린 48년간의 전반은 내정의 정비에 힘썼고, 후반에는 무제 스스로가 불교신앙에 열중하여 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내정의 질서는 흩어졌다. 548년 북조(北朝)의 동위(東魏)에서 망명한 후경(侯景)이 건강에서 반란을 일으켜 궁중에 유폐된 무제는 병사하고, 2대 간문제(簡文帝)도 피살되었다.

후경의 난은 왕승변(王僧弁) ·진패선(陳覇先)에 의해 평정되었으나, 그 뒤 이들 사이에 쟁투가 벌어져 이에 따라 황제의 폐립이 빈번하였다. 554년 4대 원제(元帝)가 서위(西魏)의 공격을 받고 죽자 2대 간문제의 아들인 악양왕(岳陽王) 소찰(蕭양 본문 이미지 1)은 서위의 보호 아래 괴뢰정권인 후량(後梁)을 세웠다. 한편 앞서 후경의 난을 평정한 진패선은 555년 민제(閔帝)와 경제(敬帝)를 잇달아 5,6대 황제로 옹립하여 양나라의 법통을 이었으나, 557년 경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진(陳)나라를 세워 제위에 오르고 양나라는 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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