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로슬라프 1세

야로슬라프 1세

[ Yaroslav I ]

요약 키이우 공국(公國)의 대공. 발트해의 이민족을 쳐서 유리에프를 건설하였고 러시아 최고의 법전인 《야로슬라프의 법전》을 만들었으며 그리스도교와 그 문화의 보급에 힘썼다.
출생-사망 980 ~ 1054.2.2
별칭 지혜로운 자
국적 키이우 공국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야로슬라프의 법전》
주요업적 《야로슬라프의 법전》 편찬

러시아 역사에서는 지혜로운 자로 불리며 키이우 공국을 부흥시킨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부친인 블라디미르 1세(볼로디미르 1세)가 낳은 12명의 아들 중 3남이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난 뒤 키이우 공국의 통치권을 두고 형제간의 형 스뱌트폴크를 물리치고 대공이 되었다. 당시 키이우 공국은 여러개의 작은 도시국가로 분할되어 있었는데 블라디미르는 여러명의 아들에게 도시(공국)을 물려주었으나 장자인 스뱌트폴크가 동생을 살해하고 자신의 지배력을 확대하였다. 이에 야로슬라프가 군사를 이끌고 형과 전투를 벌여 20년 동안 싸움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1036년 형과 전투에서 승리하여 키이우 공국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야로슬라프가 통치한 기간이 키이우 공국의 황금기로 평가된다. 그가 재위 중에 몇 차례에 걸쳐 이웃 여러 나라를 정복하기 위하여 군대를 보냈고, 1030년에는 발트해(海)의 이민족을 정복하여 유리에프를 건설하였다. 1036년에는 변방에서 러시아를 위혀하던 유목민 페체네그를 키이우 부근에서 완패시켰다. 내정면에서는 러시아 최고(最古)의 법전인 《야로슬라프의 법전》을 만들었고, 한편 그리스도교와 그 문화의 보급에 힘썼다. 자기 자신도 노르만 계인 스웨덴의 왕녀와 결혼했을 뿐 아니라, 왕녀들을 프랑스·노르웨이·헝가리 등의 왕에게 시집 보내어 서구 제국과의 통상·우호관계를 맺었다. 키이우에 소피아대사원을 건축하였고 당시 키이우 공국을 유럽의 프랑스, 영국 보다 뛰어난 문명국가로 발전시켰다. 러시아 역사에서 매우 비중있는 인물로 추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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