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이나 사건

암보이나 사건

[ Amboina massacre ]

요약 1623년 인도네시아 동부의 암본(옛이름 암보이나)섬에서 향신료의 무역독점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영국과 네덜란드의 분규.

17세기 유럽에서는 동방에서 수입되는 후추와 향신료 등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동방무역의 선점했던 포루투갈이 쇠퇴하자 네덜란드가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며 해상무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영국은 동방으로 진출하여 향신료 무역에 나서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또한 자국에서 생산되는 모직물을 동방으로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방해상무역에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두나라 간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두고 충돌이 예상되고 있었다. 특히 동방의 암본섬은 향신료의 중심적인 재배지였기 때문에 네덜란드와 영국이 사활을 건 각축장이 되었다.

1605년 네덜란드가 1512년 이래 이 지역을 지배하였던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내자 영국도 이 곳에 상관(商館)을 설치하여 양국 세력은 이 지역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또한 두 나라간의 경쟁으로 현지에서 생산되는 향신료의 가격이 오르자 영국과 네덜란드는 협정을 맺어 향신료의 구입 비율과 가격을 조율하기로 했다. 하지만 협정과는 반대로 네덜란드와 영국 두나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1621년 동방무역의 책임자인 네덜란드의 얀 피텔스존 쿤은 영국인들을 쫓아내고 현지인에 대해 폭압적인 태도로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고자 시도했다. 또한 1623년 2월 네덜란드는 영국측이 네덜란드가 개발한 향신료 재배지역인 암본 섬(몰루카 제도 인근에 있는 섬)을 습격하려는 음모가 드러났다는 핑계로 영국인과 일본 용병(傭兵)을 불잡아 처형하였는데 이 사건을 암보이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네덜란드가 영국을 배제하고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고자 의도적으로 일으킨 조작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와 영국의 대립은 격화되었고 양국 간에 맺어진 협정은 무효가 되었다. 이후 영국은 향신료무역에서 배제되고 네덜란드는 동방에서 유럽으로 가는 향신료 무역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1652년 네덜란드와 영국간 해상전쟁이 시작되었고 3차에 걸져 전쟁이 계속되었다. 1차 전쟁은 네덜란드가 영국에 배상금을 지불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2차, 3차 전쟁으로 영국에 밀리면서 동방무역에서 점차 쇠퇴하였다.  

역참조항목

암본섬, 향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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