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청

수어청

[ 守禦廳 ]

요약 조선후기에 설치된 중앙 군영,

조선후기 5군영(五軍營) 가운데 하나로 1626년(인조 4) 서울 동남쪽의 방어선인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 일대의 방어를 위해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경기병사겸 총융사가 관할하였으나 병자호란 이후 군영으로 독립하여 수어사(守禦使)를 두었다. 처음에는 수어청의 본청을 한성부 북부 진장방(鎭長坊)에 설치하고 수어사를 한성부윤이 겸직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현장인 남한산성의 관할은 광주부윤을 부사로 임명하여 운영하였다. 이후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1795년(정조 19) 본청을 완전히 남한산성으로 옮기고 광주부윤을 광주유수(廣州留守)로 승격시켜 수어사를 겸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서울 본청의 청사는 호조로 이속시켰다.

조선의 군사제도

수어청 본문 이미지 1
5군영속오군훈련도감총융청어영청수어청금위영

관원으로는 상사(上使:정2품) 1명, 부사(副使:종2품) 1명, 중군(中軍:정3품) 1명, 수성장(守城將) 1명, 진영장(鎭營將 :정3품, 前營將은 본부 判官, 중영장은 양주목사, 후영장은 죽산부사가 겸임) 3명, 별장(여주목사·이천부사 겸임) 2명, 천총(千摠:정3품) 2명, 유영(留營) 별장 1명, 성기(城機) 별장 1명, 파총(把摠 :종4품) 3명, 종사관(從事官:종6품) 1명, 초관(哨官:종9품) 16명, 교련관(敎鍊官) 17명, 기패관(旗牌官) 19명, 별군관 19명이 있었다.

병력은 수첩군관(水堞軍官) 1,953명, 이속군관(移屬軍官) 250명, 친아병(親牙兵) 15초, 훈어군(訓禦軍) 5초, 파하군(把下軍) 106명, 난후마병(欄後馬兵) 1초, 복로군(伏路軍) 150명, 별파군(別破軍) 385명, 국별파군(局別破軍) 1,870명, 표하군 1,320명, 도총섭(都摠攝) 1명, 승군(僧軍) 356명, 아병(牙兵) 12초(호남), 아병(장단) 400명, 수전아병(水錢牙兵) 200명(각 읍에 두었다), 군수보 2,000명(경기·강원에 두었다)이 있었다.

이들 수어군은 경기 속오군을 중심으로 편제되면서 서울 동부지역의 수도방위에 임했으나 대다수 군역에 나가지 않는 대신에 미를 납부하는 불부조수미군(不赴操收米軍)이거나 수포군(收布軍)이었기 때문에 정조 이후의 수어군은 사실상 명목만 유지할 뿐이었다.

카테고리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