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염

송염

[ 宋濂 ]

요약 중국 명대의 문인 겸 정치가. 명나라 초기 대표적 학자로서 특히 산문에 뛰어났다. 육경(六經)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발현(自己發現)의 도구(道具)라고 간주하는 점에서 명대문학(明代文學)의 선구적인 존재로서의 면목을 보였다. 주요 저서에는 《송문헌공전집(宋文憲公全集)》등이 있다.
출생-사망 1310 ~ 1380
국적 중국 명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저장성 진화현
주요저서 《송학사전집》 《편학류찬》 《용문자》

자 경렴(景濂). 호 잠계(潛溪). 저장성[浙江省] 진화현[金華縣] 출생. 원(元)나라 말기의 저장의 학자 오내(吳萊)·유관(柳貫)·황잠(黃潛) 등의 문하에서 배워 박식하기로 유명하였으며, 그들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원나라 말기 전란을 피하여 용문산(龍門山)에 은거하며 저작에 종사하여, 《송학사전집(宋學士全集)》(42권), 《편학류찬(篇學類纂)》 《용문자(龍門子)》 등의 저서를 남겼다. 명나라 태조(太祖)가 세력을 잡은 후(1360)에 부름을 받고 난징[南京]으로 가서 왕세자의 스승이 되고, 1369년 《원사(元史)》 편수의 총재를 지낸 뒤, 동년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되었다. 이후, 태조의 고문으로 신임이 두터웠고, 68세에 치사(致仕:관직을 내놓고 물러남)하였다. 71세 때 그의 손자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도 쓰촨성[四川省]으로 귀양가서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그의 문장은 순수하고 심오한 운치가 있으며, 명나라 초기의 문단에서는 유기(劉基)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적 학자로서 특히 산문에 뛰어났다. 유학의 입장에서 신선(神仙)·불석(佛釋)을 부정(否定)하였다. 그런 면에서는 한유(韓愈)를 많이 닮았지만, 특별히 육상산(陸象山)의 사상에 경도되어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일체(一切)의 진리가 포함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육경(六經)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발현(自己發現)의 도구(道具)라고 간주하는 점에서 명대문학(明代文學)의 선구적인 존재로서의 면목을 보인다. 전기 작품 외에 《열강루(閱江樓)의 기(記)》와 작품집 《송문헌공전집(宋文憲公全集)》(53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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