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문학

명대문학

[ 明代文學 ]

요약 중국 명나라 때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

그 시기는 1360년대~1660년대이다. 건국 후 사회경제의 현저한 발달과 함께 서민생활의 향상, 교육의 보급 등은 문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처음에는 복고풍(復古風)인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경향을 보이다가 차차 서민적 ·대중적 색채가 짙어지는 것이 이 시대 문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초기에는 문장에 송염(宋濂) ·왕의(王禕) ·방효유(方孝儒) 등이 있으며, 시에는 유기(劉基) ·고계(高啓) ·양유정(楊維楨) ·원개(袁凱) ·임홍(林鴻)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고계(號 靑邱子)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 후 영락(永樂) ·성화(成化) 연간(1403∼87)은 이른바 태평시대인데, 이때의 문학가로는 양사기(楊士奇) ·양영(楊榮) ·양박(楊薄)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재상(宰相)의 자리에 올랐으므로 그 글을 대각체(臺閣體)라고 일컫는다.

평정전아(平正典雅)한 문체만을 중히 여기다가 깊이가 없는 범용(凡庸)으로 흘러 그 폐단을 개혁하고자 한 사람이 이동양(李東陽)이다. 그는 문장을 당송팔가(唐宋八家), 시는 성당(盛唐)을, 특히 두보(杜甫)를 종지(宗旨)로 삼았다. 홍치(弘治:1488∼1505) 연간에 이르러 이몽양(李夢陽) ·하경명(何景明) 등 이른바 전칠자(前七子)가 출현하여 복고(復古)를 주장하고 글은 진한(秦漢), 시는 성당을 내세워 의고(擬古)의 풍조가 열렸다. 그러나 이들과는 독립하여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 ·당인(唐寅) 등은 독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또 왕신중(王愼中) ·당순지(唐順之) ·모곤(茅坤) ·귀유광(歸有光) 등은 따로 구양 수(歐陽修) ·증공(曾鞏)의 문장과 초당(初唐)의 시풍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한때 의고파가 쇠퇴하는 듯하였으나 가정(嘉靖:1522∼1566) 말년 이반룡(李攀龍) ·왕세정(王世貞) 등 후칠자(後七子)가 나타나면서 의고파는 다시 세력을 얻어 마침내 일세를 풍미(風靡)하게 되었다.

이 의고파에 대항한 문학가로 서위(徐渭) ·탕현조(湯顯祖)가 있으며 또 만력(萬曆:1573∼1619) 중엽 이후 의고파의 반동으로 일어난 원종도(袁宗道) ·원굉도(袁宏道) ·원중도(袁中道) 등의 공안파(公安派)가 있다. 이 파는 백낙천(白樂天)의 시와 소동파(蘇東坡)의 글을 종지로 삼고 의고파에 반대하여 성령(性靈)을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경박 ·통속화하는 폐풍을 낳게 되어,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경릉파(竟陵派)의 종성(鍾惺) ·담원춘(譚元春)이 나타나 유심고초(幽深孤峭)를 표방하였다. 이 밖에 같은 시기의 시인으로 고반룡(高攀龍)이 있으며 명나라 최후를 장식하는 시인으로 진자룡(陳子龍)이 있다. 명대의 시선집(詩選集)으로는 주이존(朱彛尊)의 《명시종(明詩綜)》이 있으며 문선집(文選集)으로는 하교원(何喬遠) 편의 《명문징(明文徵)》, 정민정(程敏政) 편의 《황문명형(皇文明衡)》, 황종의(黃宗義) 편의 《명문해(明文海)》 등이 있다.

소설로는 장편소설의 발생이 가장 주목할 만한데, 《수호전(水滸傳)》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 등은 모두 이 시대의 산물이다. 단편소설로는 빙몽룡(憑夢龍)의 《삼언(三言:喩世明言 ·警世明言 ·醒世明言)》, 능몽초(凌濛初)의 《이박(二拍:拍案驚奇 ·二刻拍案驚奇)》이 있고, 다시 이 양자에서 40편을 추려 편집한 《금고기관(今古奇觀)》이 있다. 문어체 소설로는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가 있으며 속편으로 이정(李楨)의 《전등여화(剪燈餘話)》가 있다. 한편 희곡(戱曲)에서는 원곡(元曲)인 북곡(北曲)에 대응하는 이른바 남곡(南曲)이 발달하여 명나라 초기 고명(高明)의 《비파기(琵琶記)》는 남곡의 조(祖)라 일컬어지며 탕현조의 《모란정환혼기(牡丹亭還魂記)》는 당대의 걸작으로 《남가기(南柯記)》 《한단기(邯鄲記)》 《자채기(紫釵記)》와 함께 옥명당사몽(玉茗堂四夢)의 칭호가 있다.

참조항목

당송팔대가, , 송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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