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손녕

소손녕

[ 蕭遜寧 ]

요약 거란(契丹)이 세운 요(遼)의 장수로 993년 군대를 이끌고 고려(高麗)를 침공하였으나 서희(徐熙)와의 담판(談判)으로 강화(講和)를 한 뒤 철군하였다.
출생-사망 ? ~ ?
본명 덕(德)
국적 중국 요(遼)
활동분야 정치 군사

자(字)는 손녕(遜寧), 이름[諱]은 덕(德) 또는 항덕(恒德)이다. 1018년 고려를 침공했다 강감찬(姜邯贊)에게 크게 패한 요(遼)의 장수 소배압(蕭排押)의 동생이다. 소씨(蕭氏)는 대대로 요의 황족(皇族)인 야율씨(耶律氏)와 결혼했는데, 형인 소배압은 요 경종(景宗, 재위 969~982)의 딸인 위국공주(衛國公主)와 결혼했으며, 소손녕(蕭遜寧)도 983년(統和 원년) 경종의 막내딸인 월국공주(越國公主)와 결혼해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었다.

《요사(遼史)》에 따르면 담력(膽力)과 지모(智謀)가 뛰어났으며, 986년 송(宋)의 조빈(曹彬, 931~999)이 거란을 공격해왔을 때 공을 세워 동경유수(東京留守)가 되었다. 989년(統和 6년) 송을 공격하였을 때 선두에서 공을 세웠으며, 993년(고려 성종 12년)에는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하였다. 봉산(蓬山)을 빼앗고 계속 남침을 기도하였으나 청천강 남쪽의 안융진(安戎鎭) 공격에 실패하자 고려에 화친을 제안하였다.

소손녕은 고려의 내사시랑(內史侍郞)인 서희(徐熙)와의 담판(談判)으로 강화(講和)를 한 뒤 철군하였다. 강화의 결과, 고려는 형식적이나마 송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요와 사대(事大)의 관계를 맺는 대신, 청천강 이북 지역에서 여진(女眞)을 몰아내고 흥화진(興化鎭), 통주(通州), 구주(龜州), 곽주(郭州), 용주(龍州), 철주(鐵州) 등의 이른바 강동 6주를 설치하여 영토를 압록강까지 넓히게 되었다. 

995년 공신(功臣)의 칭호를 받았으며, 화삭노(和朔奴)와 함께 발해의 유민이 세운 올야국(兀惹國)을 공격하였다. 올야국이 화친을 제안했으나 소손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공격에 실패하였다. 소손녕은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갈 수 없다며 화삭노(和朔奴)로 하여금 고려 북쪽 경계까지 나아가 여러 부족을 공격케 하였으나, 식량이 떨어져 수많은 사상자만 낳았다.

997년(統和 14년)에는 여진(女眞)의 포로모타부(蒲盧毛朵部)를 공격하고 돌아왔다. 이 무렵 부인인 월국공주가 병이 들자 생모인 승천황태후(承天皇太后, 성종의 모친인 睿智皇后 蕭綽)가 궁녀 현석(賢釋)을 보내 시중들게 하였으나, 소손녕은 이를 사사로이 취했다. 998년(統和 15년) 이 일로 병세가 심해져 월국공주가 죽자, 태후는 노하여 소손녕에게 독약을 보내 사사(賜死)하였다. 죽은 뒤에 난릉군왕(蘭陵郡王)으로 봉해졌다.

카테고리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