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디아나

소그디아나

[ Sogdiana ]

요약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 양강(兩江) 상류의 중간을 동서로 흐르는 제라프샨강(江) 유역의 옛이름.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주(州)로 서쪽은 수그다라고 하였고, 중국에서는 속특(粟特)이라고 불렀다. 10세기의 아라비아 지리학자 무카다시는 이것을 "신(神)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상찬하였다. 현재는 대부분이 우즈베키스탄에, 북서의 일부가 타지키스탄에 속하여 있다.

예로부터 농업이 성하며 사마르칸트·부하라 등의 도시국가가 세워졌다. 아케메네스조(朝)·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가 그후 박트리아·대월지(大月氏)·쿠샨조(朝)·사산조(朝) 페르시아·에프탈·서돌궐(西突厥)의 지배를 받았고, 8세기에 아라비아인의 정복으로 이슬람화되었다. 그후 1220년에 칭기즈칸의 서정(西征)으로 공략되어 황폐화되었으나, 1370년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하면서 부흥됐다. 오늘까지 남아 있는 이슬람 사원 등, 위관(偉觀)의 대건축물이 있었다.

15세기 말 우즈베크족의 흥기와 더불어 번영의 중심은 부하라로 옮겨졌으나, 1868년 러시아군의 점령으로 다시 사마르칸트의 중심이 되었다. 그 원주민은 이란계로 소그드인이라고 불려졌고, 예로부터 국제적 상업무역에 종사하면서 톈산[天山]산맥 북쪽 기슭, 간쑤[甘肅] 북서부, 동(東)투르키스탄, 몽골고원 내부에 거류지를 만들었고, 당(唐)의 장안(長安)에도 많이 살고 있었다. 특히 흉노·돌궐·위구르 등의 유목국가의 내부에서는 사업에 종사함과 아울러 그 군주들의 정치적·문화적 고문(顧門)으로서 활약하여, 중국에서는 상호(商胡)·가호(賈胡)로 불려졌다.

751년에 탈라스강(江)의 싸움에서 아라비아군에게 당군이 패하고 당군의 포로에 의하여 제지법(製紙法)이 세계에 퍼져 파피루스나 양피지(羊皮紙)와 대체되었다. 그들은 처음에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나 후에 마니교로 개종한 자가 생겼으며, 그들의 발전에 따라 마니교가 위구르의 국교가 되었고, 이어서 당나라 때에 중국에도 전하여졌다.

그들이 사용한 달력은 티무르조(朝)의 울루그 베그 때까지 이 지방에서 사용되었고, 또한 소그드 문자에서 위구르 문자가 만들어져, 이것이 몽골문자·만주문자의 기본이 되었다. 근년에 사마르칸트 동쪽의 무그산(山), 북서의 피안즈켄트에서 소그드인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생활양식과 문화가 밝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