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

소공

[ 召公 ]

요약 중국 주(周)의 정치가로서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인 연(燕)의 시조(始祖)이기도 하다. 주공(周公)과 함께 주(周)의 건국과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출생-사망 ? ~ ?
본명 석(奭)
국적 중국 주(周)
활동분야 정치

성(姓)은 희(姬), 이름은 석(奭)이다. 기원전 11세기 때의 사람으로 주(周) 왕실(王室)의 일족(一族)이다. 소(召, 지금의 陝西 歧山)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하여 소공(召公)이라고 부르며, 소공석(召公奭), 소백(召伯), 소강공(召康公), 주소공(周召公)이라고도 한다. 주(周) 성왕(成王) 때에 삼공(三公)의 위(位)에 올랐으며, 태보(太保)의 직책(職責)을 맡았다.

무왕(武王)을 도와 (商)을 멸망시키고 주(周)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연(燕, 지금의 河北 북부)을 분봉(分封)받아 전국시대(戰國時代) 칠웅(七雄) 가운데 하나인 연(燕)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하지만 소공(召公)은 직접 연(燕)을 다스리지는 않고, 호경(鎬京, 지금의 陝西省 長安縣)에 머물러 있으면서 장자(長子)인 희극(姬克)을 계(薊, 지금의 北京)로 보내 다스렸다.

소공(召公)은 주(周) 문왕(文王)부터 강왕(康王)까지 4대에 걸쳐 정사(政事)를 돌보았는데, 특히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주공(周公) 희단(姬旦)과 함께 훌륭히 보필하여 주(周) 왕조(王朝)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소공(召公)과 주공(周公)은 각각 주(周)를 동서(東西)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주공(周公)은 낙읍(洛邑, 지금의 河南省 洛陽)에 머물면서 동쪽 지역과 제후(諸侯)들을 관장하였고, 소공(召公)은 서쪽 지역을 다스렸다. 소공(召公)이 다스렸던 지역에서는 후백(侯伯)부터 서인(庶人)까지 모두 제 할 일을 얻어 실직자가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범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는 곳곳을 순시하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폈는데, 감당(甘棠) 나무 아래에서 백성의 송사(訟事)를 듣고 공정하게 해결해 주어 후대(後代)에도 사람들이 소공(召公)을 대하듯 그 나무를 대하며 그의 선정(善政)을 기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어진 정치를 펼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감당지애(甘棠之愛)’, ‘감당유애(甘棠遺愛)’ 등의 성어(成語)가 비롯되었다. 그리고 <시경(詩經)>에도 “우거진 저 감당나무 자르지도 말고 베지도 마십시오. 소백께서 지내셨던 곳입니다. 우거진 저 감당나무 자르지도 말고 꺾지도 마십시오. 소백께서 쉬셨던 곳입니다. 우거진 저 감당나무 자르지도 말고 휘지도 마십시오. 소백께서 즐기셨던 곳입니다.(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 蔽芾甘棠 勿翦勿敗 召伯所憩. 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라는 민요(民謠)가 실려 있다.

참조항목

무왕, 전국7웅, , 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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