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공

삼공

[ Three Excellencies , 三公 ]

요약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국가에서 근대 이전에 3개의 최고위 대신(大臣)의 직위를 나타냈던 말로, 중국 주(周)의 관제(官制)에서 비롯되었다.

삼공(三公)은 중국, 한국, 일본에서 근대 이전에 3개의 최고위 대신(大臣)의 직위(職位)를 나타냈던 말로, 삼태(三台), 삼괴(三槐) 등으로도 부른다. 중국의 주(周)에서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의 관직(官職)을 삼공(三公)이라 한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주(周)에서는 궁정(宮庭)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槐]를 심고 삼공(三公)이 이를 향해 앉았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삼공(三公)을 달리 삼괴(三槐), 태괴(台槐), 괴정(槐鼎) 등으로 부르고, 삼공(三公)의 자리를 공괴(公槐), 괴위(槐位) 등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이후 진(秦)이나 전한(前漢)에서는, 행정(行政)을 담당한 승상(丞相), 군사(軍事)를 담당한 태위(太尉), 감찰(監察)을 담당한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삼공(三公)이라 하였고, 뒤에 그 명칭을 각각 대사도(大司徒), 대사마(大司馬), 대사공(大司空) 등으로 바꾸었다. 후한(後漢)에서는 다시 명칭을 사도(司徒), 태위(太尉), 사공(司空)으로 바꾸어, 이를 삼공(三公)이라 했으며, 삼사(三司)라고도 불렀다.

후한(後漢) 이후 당(唐), 송(宋) 시대까지는 사도(司徒), 태위(太尉), 사공(司空)의 직위를 삼공(三公)이라 불렀다. 하지만 수(隋), 당(唐) 시대 이후 3성6부제(三省六部制)가 확립되자 정무(政務)가 각 부(部)의 장관인 상서(尙書)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삼공(三公)은 실권을 잃고 명예직으로 바뀌어갔다. 북위(北魏)에서는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삼사(三師)라고 불렀는데, 당(唐)은 정1품관(正一品官)으로 삼사(三師)를 따로 두어 왕의 고문(顧問)을 맡겼다. 원(元), 명(明), 청(清) 시대에는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삼공(三公)이라 부르며, 대신(大臣)의 최고 영예직으로 하였다.

한국에서는 고려(高麗)에서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의 벼슬을 두어 이를 삼공(三公)이라 하였으며,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의 삼사(三師)를 따로 두었다. 이들은 모두 정일품으로 임금의 고문 구실을 하는 국가 최고의 명예직이었지만, 1362년 공민왕 때에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의정부(議政府)의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의 3의정(三議政)을 삼공(三公)이라고 불렀다. 3의정(三議政)은 초기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가 의정부(議政府)로 개편되었을 때는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었으나, 1436년 세종이 3의정(三議政)을 국정(國政)에 참여케 하여 의정부 서사(署事) 제도를 실시하면서 그 권한이 강화되었다. 이로부터 3의정은 삼정승(三政丞), 삼공(三公)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日本)에서는 702년 대보율령(大寶律令)의 시행으로 최고의 행정 기관으로 태정관(太政官)이 설치되자, 태정관(太政官)의 수장(首長)인 태정대신(太政大臣), 좌대신(左大臣), 우대신(右大臣)을 삼공(三公)이라 하였다. 태정대신(太政大臣)이 상임직(常任職)이 아니므로 좌대신(左大臣), 우대신(右大臣), 내대신(内大臣)을 삼공(三公)이라고 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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