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광

사마광

[ 司馬光 ]

요약 중국 북송(北宋)의 정치가·사학자. 신종이 왕안석을 발탁하여 신법을 단행하게 하자 이에 반대해 사퇴했다. 《자치통감》을 완성했고 철종이 즉위한 뒤 재상이 되자 왕안석의 신법을 구법으로 대체, 구법당의 수령으로 수완을 크게 발휘하는가 했다.
출생-사망 1019 ~ 1086
우부, 우수
별칭 속수선생, 사마온공, 시호 문정
국적 중국 북송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중국 산시성
주요저서 《자치통감》(1084)

자 군실(君實). 호 우부(迂夫)·우수(迂叟). 시호 문정(文正). 산시성[山西省:夏縣 涑水鄕] 출생이다.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고도 하며, 죽은 뒤 온국공(溫國公)에 봉해졌으므로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20세에 진사가 되고, 1067년 신종(神宗)이 즉위한 해에 한림학사(翰林學士), 이어서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신종이 왕안석(王安石)을 발탁하여 신법(新法:革新政策)을 단행하게 하자, 이에 반대하여 새로 임명된 추밀부사(樞密副使)를 사퇴하고, 1070년에 지방으로 나갔다. 당시 그는 편년체(編年體)의 역사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쓰고 있었다. 신종도 그 책의 완성을 크게 기대하여 편집의 편의를 제공, 그의 뜻대로 뤄양[洛陽]에 거주하며 편집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 등 원조를 아끼지 않았으며, 1084년 마침내 전 20권의 《자치통감》을 완성하였다. 이듬해 신종이 죽고 어린 나이의 철종(哲宗)이 즉위, 조모인 선인태후(宣仁太后)가 섭정이 되자, 신법을 싫어하는 태후에게 발탁되어 중앙에 복귀, 정권을 담당하였다.

당시의 연호(年號)를 따서 ‘원우(元祐)의 재상(宰相)’이라고 일컬어졌다. 재상이 되자 왕안석의 신법을 하나하나 폐지하고 구법(舊法:保守政策)으로 대체하여, 구법당(舊法黨)의 수령으로서 수완을 크게 발휘하는가 하였으나, 몇 달 안 되어 죽었다. 그뒤로 신법당(新法黨)이 세력을 얻자, ‘원우(元祐)의 당적(黨籍)’(블랙리스트)에 올라 냉대를 받았으나, 북송 말부터는 명신(名臣)으로 추존되었다. 저술로는 《자치통감》 외에 《속수기문(涑水紀聞)》 《사마문정공집(司馬文正公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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