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굴산문

사굴산문

[ 闍崛山門 ]

요약 신라 말 범일(梵日)이 강원 강릉시 굴산사에 개창한 산문.

수선사를 결성하여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松廣寺)에서 선종을 다시 일으킨 지눌(知訥)을 배출하여, 가지산문(迦智山門)과 함께 고려 중엽에 구산선문의 맥을 이었으며, 제자로 개청(開淸)과 행적(行寂)이 있다. 충청남도 대덕군 백달산에서 수행한 범일은 명주도독 김공의 요청으로 굴산사에서 머물다 입적하였다. 행적은 경북 봉화군 태자사에 자리하고, 손자 격인 순백의 음기(陰記)에 의해 제자의 이력이 자세하게 남아 있다.

개청은 명주(강릉) 성산 지장선원(현 보현사)에 자리하고 있다. 행적은 김해 지방의 가야계 김씨 세력인 소충자(蘇忠子)와 소율희(蘇律熙) 형제의 후원을 받고, 신덕왕의 요청으로 남산 실제사에 머문다. 개청은 알찬(閼飡) 민규(閔規)와 왕순식(王順式)의 후원을 받고, 뒤이어 왕건과 인연을 맺는다.

이러한 사실로서, 김해와 마찬가지로 신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명주 지역은,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 이후 친고려정책으로 전환한 신라왕실에 같이 발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위로는 명주에서 아래로는 김해에 이르기까지, 후삼국기 한반도의 동부지역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신라의 영향권 속에 들어 있었다고 하겠다.

사굴산문 본문 이미지 1
수미산문사굴산문희양산문성주산문실상산문가지산문동리산문봉림산문열반종법상종화엄종법성종계율종분황사부석사법흥사봉암사성주사(보령성주사지)경복사금산사실상사봉림사통도사태안사보림사사자산문신라발해굴산사5교9산

참조항목

산문

카테고리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