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

분재

[ pot-planting , 盆栽 ]

요약 작은 분(盆)에 키 낮은 나무를 심어 그 노거목(老巨木)의 특징과 정취를 축소시켜 가꾼 것.
소나무의 분재 방법

소나무의 분재 방법

우거진 숲, 고산절벽을 연상시키는 등 다양한 기교와 창의력을 발휘해 여러 가지 수형을 구성하여 작은 분에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적인 배양기술이 필요하고 분재로 가꾸기에 좋은 수종을 선택해야 하며, 심미안을 키워야 한다.

궁궐이나 귀족 저택의 뜰에 자연의 산야풍경을 꾸미려는 조원(造園)을 구성하는 데서 연유하나 정확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중국 당송대(唐宋代)에 이런 풍류가 번성하였고, 한국의 백제 ·신라에도 이러한 양식이 전래되어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정원 조성의 발달에 따라 한층 더 함축적이고도 섬세한 분재라는 기예(技藝)가 발생하였다. 중국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읊은 석류분시(石榴盆詩), 장후태자의 묘에서 발견된 분경화(盆景畵), 송나라 때의 도요지에서 발견된 화분과 수선분(水仙盆) 등을 통해 이미 600년대에 분재가 일반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문헌에 나타난 가장 오랜 기록은, 고려 말 재상인 전녹생(田祿生:1318~75)이 8세 때 분재의 정취를 읊은 《영분송(詠盆松)》으로 다음과 같다. “산 속의 석자나무 풍상 겪은 그 모습/화분에 옮겼더니 또 한번 기특하네/바람은 속삭이듯 베갯머리에 와서 닿고/가지에 걸린 달은 창에 뜨기 더디어라/힘들여 가꾸기에 새 가지 돋아나고/이슬비 흠뻑 젖어 잎마저 무성하네/동량의 재목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서재에서 마주 보면 마음이 통한다네(山中三尺歲寒姿/移托盆心亦一奇/風送濤聲來枕細/月牽疎影上窓遲/枝盤更得栽培力/葉密會沾雨露私/他日棟樑雖未必/草堂相對好襟期)” 조선 초기의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강희안(姜希顔:1417~64)의 저술인 분재의 고전 《양화소록(養花小錄)》(1441)을 보면, 화초 키우는 법과 함께 분재로서의 여러 가지 종목(種目)을 예시하여 가꾸는 방법에 대해 소상히 기술하였다.

오늘날의 한국의 분재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 기교적으로 발달된 일본 분재가 1960년 이후 한국 분재계에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한국 고유의 정서와 기질에 어울리는 분재미를 창출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