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부곡

부산부곡

[ 富山部曲 ]

요약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지역에 있던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동래군의 영현(領縣)인 동평현(東平縣)에 속하였다. 부산(釜山)이란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신증국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는 옛 장산국 또는 내산국이었다. 신라는 이 지역에 거칠산군(居漆山郡)을 두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동래군으로 개칭하고, 동평현과 기장현(機張縣)을 영현으로 하였다. 동평현은 대증현(大甑懸)을, 기장현은 갑화랑곡현(甲火良谷懸)을 경덕왕 때 개칭한 것이었다. 동평현은 1018년(현종 9) 양주(梁州)의 영현이 되었다가 1428년(세종10) 동래현에 이속되었다.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과 수정동을 둘러싸고 있는 증산(甑山)의 증(甑)은 부산의 부(釜)와 마찬가지로 떡을 찌거나 밥을 짓는 그릇을 나타낸다. 조선시대 세종 때 일시 부산(富山)이라 칭하다가 부산(釜山)으로 바꾸어 불렀으며 얼마 뒤에는 다시 증산이라 하였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산은 동래군의 동평현에 있는데 산이 가마솥모양[釜形]으로 생겼기 때문에 그 밑을 부산포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부산포(富山浦)라는 지명은 일찍부터 사용하였고 부산(釜山)이라는 지명과 혼용되었다. 

고려시대 부곡은 남부지역에 전체의 약 88% 정도가 분포되어 있었으며, 군현제의 하부구조로 존재하였다. 후삼국 통합전쟁시 왕조에 저항한 호족세력지역의 주민들은 강제적으로 부곡민으로 편성되었다. 부곡민은 부곡리와 부곡인으로 구성되었으며, 부곡리는 하급 이족(吏族) 신분층으로 부곡인을 지휘·감독하였다. 부곡인은 농업생산에 종사하는 한편, 반왕조적 집단이었기 때문에 국가직속지인 둔전(屯田)·학전(學田) 등을 경작하거나 군사요충지에 성을 쌓는 역을 부담하였다.

참조항목

동래군, 부산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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