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날 볼키아

하사날 볼키아

[ Muda Hassanal Bolkiah ]

요약 입헌군주국인 브루나이의 국왕 겸 정치가. 석유와 천연가스에 브루나이 경제가 지나치게 의존하자 지나친 석유의존도를 탈피하고 식량자급, 산업다원화, 인프라스트럭처(사회적 생산기반) 구축 및 사회경제발전을 적극 도모했다.
출생-사망 1946.7.15 ~
국적 브루나이
활동분야 정치

동남아시아 보르네오섬(Borneo) 북서 해안에 있는 나라인 브루나이 술탄국(State of Brunei Darussalam)의 국왕으로, 국법에 따라 총리·국방장관·재무장관을 겸임하고 있다. 콸라룸푸르(Kuala Lumpur)에서 유학하였고, 영국 샌드허스트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68년 회교절대왕정체제인 브루나이의 세습왕정제 국왕인 29대 술탄(Sultan)이 되었다.

1979년 브루나이·영국 우호협력협정에 따라 1984년 1월 완전독립한 이후 현재까지 국왕으로 재임하고 있으며, 1984년 4월 방한(訪韓)하기도 하였다. 풍부한 석유자원 수출로 동남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산유국 국왕이자, 세계적인 자산가로 알려졌다.

입법부와 의회, 정당활동도 거의 없는 브루나이의 절대왕권체제의 국왕으로서 사법부도 그에게 종속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아무런 활동이 없었던 브루나이의 유일합법정당인 브루나이민족연대당(Brunei Solidarity National Party)은 1995년 2월 전당대회를 열고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하였다.

국내 총생산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한 비율이 60%에 이를 만큼 브루나이 경제가 두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자, 그는 브루나이를 동남아시아 사업활동의 중심지로 개발해 이 지역의 사업을 끌어들이려는 구상을 하였다. 제7차(1996∼2000)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및 동아시안성장지대(EAGA), 무역 및 관광서비스 프로젝트 등을 통해 지나친 석유의존도를 탈피하고 식량자급, 산업다원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사회적 생산기반) 구축 및 사회경제발전을 적극 도모하였다.

1997년 이래 아시아 각국의 외환금융위기에 동남아시아 통화와 주가하락을 막기 위하여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주식 및 외환시장에 개입하였고, 1998년 외무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경제각료위원회’ 설치를 명령하는 등 긴축조치와 경제개혁안을 발표하였다.

1998년 3월 그의 동생 하지 제프리 볼키아 왕자와 함께 미스 아메리카 출신 섀넌 마케틱에게 제소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마케틱의 주장을 부인하였고, 1998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연방법원도 이슬람 군주와 왕자는 외교상 면책특권을 지니고 있다며 소송을 기각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브루나이는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 큰 수모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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