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중엄
[ 范仲淹 ]
- 요약
중국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학자. 인종의 친정이 시작되자 간관이 되었으나 곽 황후의 폐립문제를 놓고 찬성파인 재상과 대립해 지방으로 쫓겨났다. 서하 대책을 맡고 그 침입을 막은 공으로 승진하여 내정개혁에 힘썼으나 하송 일파의 저항으로 지방관을 지냈다.
베이징 쿵먀오 전청의 범중엄 초상화
출생-사망 | 989 ~ 1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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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희문 |
시호 | 문정 |
국적 | 중국 북송 |
활동분야 | 정치 |
출생지 | 중국 장쑤성 쑤저우 |
주요작품 | 《범문정공집》(24권) |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출생. 자 희문(希文). 시호 문정(文正). 인종(仁宗)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자 부름을 받아 중앙에서 간관(諫官)이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곽황후(郭皇后)의 폐립문제를 놓고 찬성파인 재상 여이간(呂夷簡)과 대립했기 때문에 다시 지방으로 쫓겨났다. 그 뒤로 구양수(歐陽修) ·한기(韓琦) 등과 함께 여이간 일파를 비난하였으며, 자기들 스스로 군자의 붕당(朋黨)이라고 자칭하여 경력당의(慶曆黨議)를 불러일으켰다.
1038년에 이원호(李元昊)가 서하(西夏)에서 제위(帝位)에 오르자, 산시경략안무초토부사[陝西經略安撫招討副使]가 되어 서하 대책을 맡고, 그 침입을 막았다. 그 공으로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고, 이어 참지정사(參知政事: 부재상에 해당)로 승진하여 내정개혁에 힘썼으나, 그를 미워하는 하송(夏悚) 일파의 저항이 강하여 다시 지방관(地方官)을 역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시문 등을 모은 《범문정공집(范文正公集)》(2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