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필

박승필

[ 朴承弼 ]

요약 영화흥행사 ·극장경영자 ·제작자. 단성사를 인수하여 극장운영을 통해 상당한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흥행자본이 제작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만들었다.《장화홍련전》은 단성사 촬영부가 제작한 첫번째 영화이자 일본인이 참여하지 않은 최초의 극영화이며 ‘나운규 프로덕션’의 실질적인 후원자 역할을 했다.
출생-사망 1875? ~ 1932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서울
주요작품 《의리적 구투》

서울 출생. 성장과정이나 흥행계 입문 과정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908년 광무대(光武臺)를 인수, 판소리 ·탈춤 등 한국 전통연희 공연장으로 운영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1918년에는 단성사(團成社)를 인수, 구극(舊劇) 전문인 광무대와 영화위주의 단성사를 동시에 운영함으로써 이후 10여 년 간 흥행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흥행계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극장운영을 통해 상당한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흥행자본이 제작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만들었다.

이어 신극좌(新劇座)의 대표 김도산(金陶山)과 손잡고 연쇄극 《의리적 구투(義理的仇鬪)》를 제작, 1919년 단성사에서 공연함으로써 한국인에 의한 영화제작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연극 중의 일부 장면을 영화화면으로 처리한 연쇄극은 연극적 형식이지만 영화장면을 촬영해야 했으며, 이것이 영화작업의 기초가 된 셈이다. 《의리적 구투》의 흥행성공으로 연쇄극 제작이 한때 유행하였으며, 박승필은 대부분의 연쇄극 제작에 참여했다. 1924년 단성사에 촬영부를 설치했는데, 이것은 초창기 영화사 중의 하나였다. 박정현(朴晶鉉) 감독, 이필우(李弼雨) 촬영으로 만든 《장화홍련전》은 단성사 촬영부가 제작한 첫번째 영화이자 일본인이 참여하지 않은 최초의 극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나운규(羅雲奎)가 ‘나운규 프로덕션’이라는 영화사를 세우고 활동했을 때 실질적인 후원자 역할을 했는데, 《잘 있거라》(1927) 《옥녀》(1928) 《사나이》(1928) 등은 그의 자본으로 제작된 영화들이었다.

참조항목

광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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