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량
[ 朴遂良 ]
- 요약
조선 중기 연산군, 중종 때의 학자·효자. 고향에 효자정문이 세워졌다. 유일로 천거되어 용궁현감, 사섬시주부 등을 지냈다. 중종 때 기묘사화로 파직, 강릉에서 시와 술로써 여생을 보냈다. 문집 《삼가집》이 있다.
![박수량 지려](https://dbscthumb-phinf.pstatic.net/2765_000_357/20190919085734603_MGL4SZ3UD.jpg/9909465.jpg?type=m250&wm=N)
박수량 지려
출생-사망 | 1475 ~ 1546 |
---|---|
본관 | 강릉 |
자 | 군거(君擧) |
호 | 삼가정(三可 亭) |
주요저서 | 《삼가집》 |
본관 강릉. 자 군거(君擧). 호 삼가정(三可 亭). 1504년(연산군 10) 진사가 되었다. 단상법(短喪法)이 엄한 연산군 때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 여막(廬幕)에서 살았다. 중종반정 뒤 고향에 효자정문(孝子旌門)이 세워졌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7년간 용궁현감(龍宮縣監), 이어 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 등을 지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파직, 강릉으로 돌아가 시와 술로써 여생을 보냈다. 문집 《삼가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