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경

박도경

[ 朴道京 ]

요약 한말의 항일 의병장. 기삼연(奇參衍)을 도와 부안(扶安)·고창(高敞) 등지에서 활발한 의병활동을 하였다. 일본의 의병대토벌작전 전개 후에는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874.3.23 ~ 1910.2.8
본관 밀양
경화·화옥
순재
본명 경래
별칭 별명 포대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전북 고창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8)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경화(京化)·화옥(化玉), 호는 순재(筍齋)이다. 본명은 경래(慶來)이고 별명은 포대(砲大)이다.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준식(準植)이다. 1905년 일제에 의하여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전라남도 장성(長城)에서 기삼연(奇參衍)이 의병을 일으키자 무기를 수집하여 제공하였으며, 김익중(金翼中)·서석구(徐錫球)·전수용(全垂鏞) 등과 종사(從事)로 활약하였다.

1907년 9월 기삼연이 영광(靈光) 수록산(髓綠山)에서 김용구(金容球)· 김엽중(金燁中)·김준(金準) 등과 합류하여 조직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포사대장(砲射隊長)이 되어 천보포(千步砲)를 휴대하고 부안(扶安)·고창(高敞)·광주(光州)·담양(潭陽)·순창(淳昌) 등지에서 20여 차례에 걸쳐 일본군과 교전하여 4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8년 1월 기삼연이 체포되자, 격문을 돌려 김공삼(金公三)과 함께 의병활동을 독려하고 포사장(砲士將)이 되어 의진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의병대토벌작전이 전개되어 의병활동이 어렵게 되자 장성으로 돌아가 의병을 모으는 한편, 군사훈련과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였다.

1909년 초 다시 전수용 의진과 연합하여 남포(藍浦)·부안 등지에서 활약하였고, 같은 해 4월 부안군 상서면(上西面)에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기병대와 교전하다 패하자 의병을 해산하고 가협산(加峽山)으로 피신하였다. 그후 은신처가 드러나 1909년 12월 광주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1910년 2월 옥중에서 자결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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