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암부인 송씨

미암부인 송씨

[ 眉巖夫人 宋氏 ]

요약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의 부인으로, 정교하면서도 고상하고 우아한 맛을 풍기는 한시를 쓴 조선 중기 여류시인.
출생-사망 1521 ~ 1578
본관 홍주(洪州)
덕봉(德峯)
활동분야 문학
주요작품 《마천령상음(磨天嶺上吟)》 《희신사시(喜新舍詩)》

본관은 여산(礪山)송씨에서 분적한 홍주(洪州) 송씨이며 호는 덕봉(德峯)이다. 1521년(중종 16) 12월 20일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송준(宋駿)은 31세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참봉이 된 후 음직으로 별좌주부,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고 단성현감이 되었으나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덕운산에서 살았다. 덕봉의 어머니는 연산군 때 예조판서까지 오른 이인형(李仁亨)의 딸인 함안 이씨로 둘 사이에서는 정노, 정언, 정수라는 세 아들과 두딸이 있었는데 덕봉은 그 중 둘째딸이다. 결혼 전 그녀의 집안은 학문과 시문에 힘쓰는 지방의 명문가로 그녀 역시 어려서부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며 자랐으며 16세인 1536년 해남 출신으로 호남의 다섯 현인으로 꼽히던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과 혼례를 올렸다.

미암은 2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으나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이후 21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미암의 유배기간동안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시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른 후에는 남편의 귀양지 함경도 종성으로 홀로 찾아가 남편과 함께 유배생활을 견디었다. 미암은 1567년 복직되고 부제학까지 벼슬이 올랐으며 그녀는 정경부인에 봉하여졌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미암 사망 1년 후인 1578년 58세로 사망하였다. 미암이 기록한 《미암일기초》에 남아있는 그녀에 대한 기록들은 가부장제가 강화되기 전 16세기를 살았던 조선시대 여인들의 당당함과 호방한 기상을 소상히 전하고 있다. 미암의 기록에 전하는 덕봉의 시문은 정교하면서도 고아한 멋을 지녔으며 그녀의 성품은 명민하였으며 서사(書史)에도 두루 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집으로 《송씨시고(宋氏詩藁)》 1권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는다. 《마천령상음(磨天嶺上吟)》 《희신사시(喜新舍詩)》 《증미암(贈眉巖)》 《취리음(醉裏吟)》 《헌화미암운(獻和眉巖韻)》등의 한시가 다수 전해지고 있다.

참조항목

유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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