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족

돌궐족

[ 突厥族 ]

요약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튀르크계 민족.
튀르크인 조각상

튀르크인 조각상

튀르크(Türk)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 처음에는 철륵(鐵勒:예니세이강 상류, 바이칼호 지방에 살았던 튀르크 종족)의 한 부족으로서 알타이산맥 방면에서 유연(柔然:몽골지방의 고대 유목민족)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중 한 씨족인 아사나씨(阿史那氏)의 족장 토문(土門:만인의 長이라는 뜻)이 유연·철륵을 격파하고 독립하여 일리가한[伊利可汗]이라 칭하였다(552).

이 무렵부터 그의 아우 디자불로스는 서방으로 진출하였고, 3대 목간가한(木杆可汗) 때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에프탈을 멸망시켰다(563∼567). 그 결과 돌궐은 동쪽으로는 중국 둥베이[東北:만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세력이 미쳤으나 동족간의 다툼으로 583년 분열하여 동돌궐은 몽골고원, 서돌궐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였다. 동돌궐은 수(隋)나라 말기에서 당(唐)나라 초기에 걸친 중국 내부의 혼란을 틈타 중앙집권화를 도모하여 그 세력이 강대해졌으나, 당나라의 공격과 철륵 제부족의 독립 등으로 630년 멸망하고 당나라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682년 다시 몽골고원에 독립국가를 세워 카파간가한[默綴可汗] ·빌케가한[毗伽可汗] 등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한때 중앙아시아에 원정할 만큼 세력을 떨쳤으나, 다시 동족간의 다툼으로 쇠약해져 744년 철륵의 한 부족인 위구르에게 멸망하였다. 

서돌궐은 동로마제국과 결탁하여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토벌하기도 하였으나 둘로 분열하였다. 당나라는 이 틈을 이용하여 이주(伊州:하미)와 서주(西州:투르판) 등의 주현(州縣)을 설치하였다. 그 후 서돌궐은 한때 통일을 이룩하였으나 당은 657년 이를 토벌하고 2명의 가한을 두어 통제하였다. 7세기 말 돌기시(突騎施)가 일어나 이 두 가한을 추방함으로써 서돌궐은 멸망하였다.

돌궐의 국가는 일(il)이라 부르며 가한(可汗) 밑에 소가한(小可汗)과 야부그[葉護] ·샤드[設] 등의 제후가 일종의 봉건영지를 소유하여 영내의 모든 부족을 통치하였다. 이들은 ‘베크[牢羽]’라는 지배계층을 구성하였고, 일반 민중은 ‘부둔’이라고 하였다. 베크들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북아시아의 유목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기록, 즉 돌궐비문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원시적인 샤머니즘을 믿고 있으나, 한때 불교가 가한을 중심으로 한 상층계급에서 유행하였다.

참조항목

베크, 철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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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상

튀르크인 상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