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한기
[ 都漢基 ]
- 요약
조선 후기의 학자. 벼슬을 하지 않고 향리에 내려가 성리학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장석영(張錫英) 등과 편지를 통하여 태극 및 심설에 관한 논변을 벌였다. 저서로 《관헌집(管軒集)》등이 있다.
출생-사망 | 1836 ~ 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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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성산(星山) |
자 | 예숙(禮叔) |
호 | 관헌(管軒) |
주요저서 | 《관헌집》, 《심근강의》, 《대학강설》, 《춘추의례》, 《사례절략》 등 |
본관 성산(星山). 자 예숙(禮叔). 호 관헌(管軒). 경사(經史)에 밝고 역학(易學) ·산학(算學) ·의학(醫學) ·병학(兵學) ·패관(稗官) 등에 두루 능통하였으나, 30세 이후로는 향리에 내려가 성리학 연구에만 힘썼다. 고을의 사단(社壇)을 1만 전을 내어 다시 고치고 향음례(鄕飮禮)를 행하는 등 선비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직첩이 내려졌으나 받지 않았다.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 장석영(張錫英) 등과 편지를 통하여 태극 및 심설(心說)에 관한 논변을 벌였다. 저서로 《관헌집(管軒集)》 《심근강의(心近講疑)》 《대학강설(大學講說)》 《춘추의례(春秋義例)》 《사례절략(四禮節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