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

노진

[ 盧禛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형조참의, 도승지 등을 지냈다. 홀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봉양으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주요저서에 문집 《옥계집》이 있다.
창주서원 명덕사

창주서원 명덕사

출생-사망 1518 ~ 1578
본관 풍천
자응
옥계·칙암
시호 문효
활동분야 행정
주요저서 《옥계집》

본관 풍천(豊川). 자 자응(子膺). 호 옥계(玉溪) ·칙암(則庵). 시호 문효(文孝). 1537년 생원시와 1546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박사 ·전적 ·예조의 낭관을 거쳐 지례현감이 되었는데,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에 녹명되었다. 지평(持平) ·형조참의 등을 거쳐 도승지에 올랐다. 1567년 이조참의에서 충청도관찰사, 전주부윤(全州府尹)을 거쳐 부제학이 되었는데 홀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모두 사퇴하고 곤양군수로 나갔다.

1575년 예조판서에 올랐으나 사퇴하고 다시 대사헌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의 내직을 받았으나 병 때문에 나가지 못하였다. 평소 기대승(奇大升) ·노수신(盧守愼) ·김인후(金麟厚)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도로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남원의 창주서원(滄州書院), 함양의 당주서원(溏州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옥계집》이 있다.

참조항목

옥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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