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치리
[ 南致利 ]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 문장에 뛰어나 이황 문하의 안자(顔子)라고 불렸다. 문과에 실패한 뒤 수양을 위한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출생-사망 | 1543 ~ 1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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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영양 |
자 | 의중 |
호 | 비지 |
출생지 | 안동 |
주요저서 | 《비지문집》 |
본관 영양(英陽). 자 의중(義中). 호 비지(賁趾). 안동(安東) 출생. 김언기(金彦璣)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독학역행(篤學力行)하여 문과(文科)에 응시, 두 번이나 실패하고는 수양을 위한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문장이 뛰어났으므로, 이황 문하의 안자(顔子)라고 불렸다. 이황이 죽었을 때 동문의 추대로 상례(相禮)를 맡아보았으며, 1578년(선조 11) 정구(鄭逑)와 함께 유일(遺逸)에 천거되었다. 안동의 노림서원(魯林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비지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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