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옥

남궁 옥

[ 南宮鈺 ]

요약 조선 중기의 서화가. 문장과 서화에 뛰어나고 특히 속필(速筆)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출생-사망 1620 ~ 1699
본관 함열
여상
창주
활동분야 미술
주요작품 《대흥사중건비문(大興寺重建碑文)》

본관 함열(咸悅). 자 여상(汝常). 호 창주(滄洲). 관찰사 율(嵂)의 아들. 1652년(효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벼슬은 시정(寺正)에 이르렀다. 문장과 서화에 뛰어나고 특히 속필(速筆)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7차례나 군(郡)·현(縣)을 맡아 다스리는 동안 청백리(淸白吏)의 표본으로 이름이 높았다.

작품으로 《대흥사중건비문(大興寺重建碑文)》 등이 있다.

참조항목

증광시

역참조항목

남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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