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구

나정구

[ 羅正龜 ]

요약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대한청년단,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에서 항일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중에서 병사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886 ~ ?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평북 태천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95)

평안북도 태천(泰川)에서 출생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가 1915년 만주에서 김좌진(金佐鎭) 등이 조직한 조선군단의 군사교육기관인 사관학교에서 근무하다가 1919년 3·1운동함석은(咸錫殷)·조재건(趙在健)· 안병찬(安秉瓚)·오학수(吳學洙)·박영우(朴永祐) 등이 안둥현[安東縣]에서 조직한 대한청년단에 가입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자금 지원을 위하여 강연수(康連洙)·김기선(金基善)· 탁공(卓公) 등과 안둥현 소만류구(小萬留構)에서 한국인의 호세(戶稅) 징수 책임을 맡아 1920년 호세 99원과 전창(田倉)지방에서 모금한 100원을 송금하는 등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단원으로서 권덕근(權德根)·김명봉(金鳴鳳)·김용보(金鎔甫)·문창현(文昌賢)·조대능(趙大能) 등과 함께 친일단체인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하여 독립군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1924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고, 제2중대 제3소대 참사로 소대장 손시형(孫始亨) 등과 함께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 관서면(館西面) 조악동(造岳洞)에서 최창학(崔昌學)이 경영하는 삼성금광(三成今鑛)을 습격하여 순사 김용정(金鎔楨)을 총살하고,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5년 11월 2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병사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