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라가극단

나미라가극단

[ 羅美羅歌劇團 ]

요약 한국의 악극단.
구분 악극단
설립일 1941년
설립목적 일류 가수 발굴
주요활동/업무 서울 및 일본에서 악극 공연
소재지 한국 서울

1940~1950년대에 인기를 모았으며, 처음에는 콜롬비아악극단이라 하다가 1941년 11월 나미라악극단으로 개칭한 뒤 더욱 이름을 떨쳤다. 당시 이름있던 콜롬비아레코드회사가 일류 가수를 발굴할 목적으로 둔 전속 경음악극단으로, 가수와 연기자 및 무희들을 등장시켜 서울 부민관 등 대극장을 주요 무대로 공연하였으며, 지방 순회공연도 가졌다.

기획을 맡은 최무성(崔茂盛)이 초대 대표를 겸하다가 후에 김윤주(金潤柱)가 대표를 이었고, 서항석(徐恒錫)·설의식(薛義植)·박노홍(朴魯洪)·채정근(蔡廷根) 등이 주요 단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콜롬비아 시절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가수 송진혁(宋鎭赫)을 입단시켰다.

나미라가극단으로 다시 출발한 1941년 11월 서항석의 가극 《견우직녀》(전
9경)와 박노홍의 희가극 《신생 제1과(新生第一課)》를 상연하였다. 8·15광복 때까지 서항석의 《은하수》, 박노홍의 《아리랑》 등 다른 악극단과는 달리 주로 한국적인 독창적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공연하였으며, 1942년에는 일본의 도쿄·오사카 등을 비롯한 주요 도시를 순회 공연하였다.

8·15광복 이후에는 주로 동양극장에서 공연하였으며, 195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의 붐이 일어나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주요 단원으로 연출자 서항석을 비롯하여, 작곡에 안기영(安基永), 악장에 김흥산(金興山), 가수·연기에 송진혁·윤부길(尹富吉)·박옥초(朴玉草)·임천수(林千壽)·계수남(桂壽男)·전옥(全玉)·장동휘(張東輝)·김용환(金龍煥)·박용구(朴容九) 등이 활약하였다.

역참조항목

장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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