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후
[ 金致垕 ]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1716년 동료와 함께 스승 송시열을 배반한 윤증의 죄를 상소하였다. 1738년 대사간이 되어 탕평책의 폐단을 상소하다가 유배되었다. 2년 뒤 대사간에 재기용되고, 1742년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정주목사가 되었다.
출생-사망 | 1691 ~ 1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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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청풍 |
자 | 사중 |
호 | 사촌 |
출생지 | 광주 |
주요저서 | 《사촌집》 |
본관 청풍. 자 사중(士重). 호 사촌(沙村). 광주(廣州) 출생.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급제, 성균관유생이 되었다. 1716년 동료와 함께 스승 송시열(宋時烈)을 배반한 윤증(尹拯)의 죄를 상소하였다.
영소전참봉을 거쳐, 1726년(영조 2) 의금부도사로 있을 때 알성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전적(典籍) ·승지를 지냈다. 1738년 대사간이 되어 탕평책의 폐단을 상소하다가, 위도(蝟島)로 유배되었다.
2년 뒤 풀려나와 다시 대사간에 기용되고, 1742년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정주목사가 되었다. 문집에 《사촌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