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려

김취려

[ 金就礪 ]

요약 고려시대의 장군. 거란 군이 의주, 삭주, 영주 등지로 침입해 그곳을 근거지로 삼으려 하자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강동성을 근거로 저항을 계속하는 거란 군을 몽골 군과 동진군과 연합해 일소하고 한순, 다지의 반란을 평정했다.
김취려장군전적비

김취려장군전적비

출생-사망 ? ~ 1234
본관 언양(彦陽)
시호 위열(威烈)
활동분야 군사

본관 언양(彦陽). 시호 위열(威烈). 음관(蔭官)으로 정위(正尉)에 임명되어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으로서 북동국경을 진압한 후 대장군이 되었다. 1216년(고종 3) 거란(契丹)의 군사들이 가족까지 이끌고 의주(義州) ·삭주(朔州) ·영주(寧州) 등지로 침입하여 식량을 약탈하고, 그곳을 생활의 근거지로 삼으려 하자, 후군병마사(後軍兵馬使)로 임명되어 그들을 크게 물리치고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이 되었다. 다음해 다시 전군병마사(前軍兵馬使)가 되어 충청도 제천(堤川)까지 침입한 거란군을 크게 무찔러 격퇴시켰다.

1218년(고종 5) 그들이 다시 침입하자 원수 조충(趙冲)과 함께 이를 격퇴하였고, 이듬해 강동성(江東城)을 근거지로 저항을 계속하는 거란군을 협격(挾擊)하기 위하여 몽골군과 동진군(東眞軍)이 당도하자 이들과 연합하여 그들 잔당을 일소하고, 같은 해 의주에서 한순(韓恂) ·다지(多知)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하는 등 공로가 많아 병부판사(兵部判事)까지 되었다. 성미가 곧고 청렴결백하여 군기가 엄하였고 부하들을 고루 사랑하였다. 조충과 함께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