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첨경

김첨경

[ 金添慶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명종 ·선조 때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역학과 경학에 밝았다.
출생-사망 1525 ~ 1583
본관 강릉
문길
동강 ·장주
시호 숙간
활동분야 행정

본관 강릉. 자 문길(文吉). 호 동강(東岡)·장주(漳洲). 시호 숙간(肅簡).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봉교(奉敎)·예조좌랑·정언(正言)·헌납·충청도어사·부수찬(副修撰)·전적(典籍)·지평(持平)을 지냈다. 정언으로 재직하던 1559년에는 이조판서 윤개(尹漑)의 불공평한 인사행정을 비난한 김규(金虯)가 모욕죄로 몰려 죽게된 것을 구하였는데, 이로 인해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었다.

1561년 강릉부사로 나갔다가, 1565년에 사직하였으나 윤원형(尹元衡)이 축출되자 사인(舍人)·장령(掌令)·집의(執義)·교리(校理)·응교(應敎)·사복시정(司僕寺正) 등을 역임하고, 1567년 당상관에 올라 동부승지·좌승지·강원도관찰사·대사성(大司成)·호조참의 등을 지냈다. 1572년(선조 5)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간(大司諫)·병조참의·전주부윤·부제학·대사헌·호조참판·형조참판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역학(易學)과 경학(經學)에 밝았다.

참조항목

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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