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

김창희

[ 金昌熙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고종 때 여러 관직을 거치며,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에서 온 마건충 ·정여창의 영접관으로 일하고, 1884년 공조판서에 이어 양관대제학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출생-사망 1844 ~ 1890
본관 경주
수경
석릉 ·둔재
시호 문헌
주요저서 《석릉집》 《회흔영》 《육입보》 《담설》 등

본관 경주. 자 수경(壽敬). 호 석릉(石菱) ·둔재(鈍齋). 시호 문헌(文憲). 예조판서 정집(鼎集)의 아들. 음보로 명릉참봉(明陵參奉)이 되었다. 1864년(고종 1) 감조관(監造官)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내외직을 거쳐 공조 ·이조 ·병조의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우승지 ·대사성 등을 거쳐 1876년 영흥부사(永興府使)를 지냈다. 이어 이조 ·병조의 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 1880년 좌승지(左承旨)가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에서 온 마건충(馬建忠) ·정여창(丁汝昌)의 영접관으로 일하고, 1884년 공조판서에 이어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문집에 《석릉집》, 저서에 《회흔영(會欣穎)》 《육입보(六入補)》 《담설(譚屑)》이 있고, 편서에 《월성가사(月城家史)》 《김씨분관록(金氏分貫錄)》 《동묘영접록(東廟迎接錄)》 등이 있다.

역참조항목

경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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