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

김주

[ 金湊 ]

요약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 고려의 우왕, 공양왕 때 관직을 지냈으며, 1392년(공양왕 4) 문하평리로서 이성계가 개국할 당시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으나 복직되고 다시 유배되기도 하였다. 성곽 축조의 권위자이다.
송산사지

송산사지

출생-사망 1339 ~ 1404
본관 낙안
시호 공간

본관 낙안(樂安). 시호 공간(恭簡). 문과에 급제, 성균직강(成均直講)으로서, 간관(諫官) 정추(鄭樞) 등이 신돈(辛旽)을 논란하는 상소를 올려 왕의 노여움을 사고 투옥되었을 때, 그에 관련되어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나와 비서감승(秘書監丞)이 되었다.

우왕(禑王) 때 사헌집의(司憲執義)·지신사(知申事)·밀직제학(密直提學)을 역임, 공양왕(恭讓王) 초에 문하평리(門下評理) 겸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도성(都城)의 수축을 건의, 축성공사가 진행되다가 중단되자 삼사좌사(三司左使)가 되었다.

1392년(공양왕 4) 문하평리로서 이성계가 개국할 당시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으나 다음해 예문춘추관대학사(藝文春秋館大學士)에 임명되고, 1395년 좌복야(左僕射)로서 신도궁궐조성도감도청(新都宮闕造成都監都廳)이 되어 환관 김사행(金師幸)과 함께 백성을 혹사하였다는 죄로 영주(寧州)에 유배되었다.

성곽 축조의 권위자로서 계룡산 신도 경영에 보좌 역할을 하였고, 한양천도 때 종묘·궁궐 등을 짓는 데 공이 컸으므로, 김사행이 제1차 왕자의 난에 관련되어 사형을 받았을 때에도 중형이 면제되었다.

참조항목

김사행, 신돈

역참조항목

낙안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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