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

김양

[ 金陽 ]

요약 신라의 왕족. 흥덕왕이 죽은 뒤 균정과 제륭이 왕위 쟁탈전을 벌이자 균정을 돕다가 실패하였다. 839년 균정의 아들 우징, 장보고 등과 함께 군사를 동원하여 왕을 시해하고 우징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신무왕이 죽은 후 문성왕을 옹립하였다.
출생-사망 808 ~ 857
위흔(魏昕)

자 위흔(魏昕). 828년(흥덕왕 3) 약관(弱冠)의 나이로 고성태수(固城太守)가 되고, 이어 중원대윤(中原大尹) ·무주도독(武州都督)을 역임하였다. 836년 흥덕왕이 죽은 뒤 균정(均貞)과 제륭(悌隆: 僖康王)이 왕위 쟁탈전을 벌이자 균정을 돕다가 실패하여 산중으로 피신하였다.

839년(민애왕 2) 균정의 아들 우징(佑徵: 神武王), 청해진(淸海鎭)의 장보고(張保皐) 등과 함께 군사를 동원하여 대구(大丘: 大邱)에서 왕을 시해하고 우징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신무왕이 죽은 후 문성왕(文聖王: 신무왕의 아들)을 옹립하였으며, 소판 겸 창부령(蘇判兼倉部令) ·시중 겸 병부령(侍中兼兵部令) 등을 지내고, 공검교위위경(公檢校衛尉卿)에 올랐다. 서발한(舒發翰)에 추증되었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능렬(陵列)에 배장(陪葬)되었다.

역참조항목

김흔, 대흔, 김양묘

카테고리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