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경

김노경

[ 金魯敬 ]

요약 조선 후기 문신. 승지 · 이조참판 · 평안도 관찰사 등을 두루 거쳐 이조 · 예조 · 병조의 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글씨를 잘 썼기 때문에 아들 정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작품에 글씨《신라경순왕전비》 《신의왕후탄강구묘비》등이 있다.
상임경당

상임경당

출생-사망 1766 ~ 1840
본관 경주
가일
유당
활동분야 행정, 정치
주요작품 《신라경순왕전비》 《신의왕후탄강구묘비》

본관 경주. 자 가일(可一). 호 유당(酉堂). 서예가 정희(正喜)의 아버지. 1805년(순조 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으로 등용되었다. 승지 ·이조참판 ·평안도관찰사등을 두루 거쳐 이조 ·예조 ·병조의 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809년 동지 겸 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1822년에는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익종이 대리청정(代理聽政)할 때 김로(金鏴) ·홍기섭(洪起燮) 등과 같이 중직에 있으면서 전권을 휘둘렀다는 죄와, 이조원(李肇源)의 옥(獄)을 밝히지 않았다는 죄로 인하여, 1830년에 탄핵을 받아 강진현 고금도(古今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1840년 사사(賜死)되었다. 사후 1858년(철종 9) 관직이 복구되었다. 글씨를 잘 썼기 때문에 아들 정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작품에 글씨 《신라경순왕전비》 《신의왕후탄강구묘비(神懿王后誕降舊墓碑)》 등이 있다.

참조항목

김정희, 심천면

역참조항목

김로, 경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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