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검

김극검

[ 金克儉 ]

요약 조선 전기 문신. 승문원교리로서 조운사종사관이 되어 경상도 군량미 10만 석을 함경도로 운송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어 홍문관부교리로서《세조실록》,《예종실록》 편찬에 기주관으로 참여하였고, 장령 · 응교 등을 역임한 뒤 외직으로 나가 뛰어난 치적을 올렸으며, 사표로 추천되었다.
출생-사망 1439 ~ 1499
본관 김해
사렴
괴애
국적 한국
주요저서 《성종실록》, 《예종실록》

본관 김해. 자 사렴(士廉). 호 괴애(乖崖). 1459년(세조 5) 식년문과 정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의 검열과 대교(待敎)를 지내고, 146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한 데 이어 발영시(拔英試)에 3등하여 재능을 떨쳤다. 그 뒤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로서 조운사종사관(漕運使從事官)이 되어 경상도 군량미 10만 석을 함경도로 운송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어 홍문관부교리로서 《세조실록》 《예종실록》 편찬에 기주관(記注官)으로 참여하였고, 장령(掌令) ·응교(應敎) 등을 역임한 뒤 외직으로 나가 뛰어난 치적을 올렸으며, 사표(師表)로 추천되었다.

1477년(성종 8) 다시 장령이 되었으나 신주(辛柱)의 분경죄(奔競罪)를 다스리지 못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1487년 승정원 동부승지로 기용되어 우승지까지 지내고, 1491년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한때 언로(言路)를 주도하였다.

1492년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중국 명나라에 다녀온 뒤 한성부 우윤과 좌윤, 호조참판이 되고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연산군 때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에 이르렀다. 학식이 뛰어나고 시문에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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