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

기사도

[ chivalry , 騎士道 ]

요약 중세 서유럽 봉건 제도의 꽃으로 불린 기사들 사이에서 성립한 규범의식 또는 행동양식의 이상형.

봉건제도가 전성기에 들어간 11세기에 발생하여 12∼13세기에 흥륭기를 이루었고, 14∼15세기에 형식적으로는 완성을 보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타락하여 퇴색해 갔다.

기사도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가져왔었는데, 기사 서임식(騎士敍任式)의 선서에서 알 수 있는 덕목(德目)은 무용(武勇) ·성실(誠實) ·명예 ·예의 ·경건(敬虔) ·겸양(謙讓) ·약자보호 등이 있다. 기사의 존립조건이기도 한 무용과 성실은 초기에 있어 기사도의 핵심을 이룬 덕목이었다. 그 후 십자군시대에 기사도는 그리스도교 윤리를 받아들여 경건 ·겸양 ·약자보호라는 덕목이 보태어졌다.

한국 화랑도의 이른바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이에 대응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의 봉건적 주종관계는 계약적 ·쌍무적(雙務的)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한국의 세속오계에서처럼 충효를 바탕으로 한 무제한 ·절대의 것은 아니었다. 무용이라는 것도 세속오계의 임전무퇴와는 달리 포로가 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수치가 아니었던 점은, 봉건 가신(封建家臣)을 주군(主君)이 몸값을 지불하고 빼 와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십자군시대부터 교회의 영향 밑에 행동의 세련에 관한 덕목이 강조되기 시작하여 약자보호는 물론 부인(婦人)에 대한 봉사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무기와 전술이 바뀌고 기사의 기반인 봉건제도가 무너져 감에 따라 기사의 사회적 몰락이 뒤따르게 되었다.

이렇게 퇴색일로에 처했던 기사도는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고취되어, 기사도의 몰락 후에도 변형된 모습으로 전수되었는데 거기에서 서양의 신사도가 나온 셈이다. 자존심의 존중, 관용 ·봉사, 여성에 대한 남성의 엄격한 예의 등이 발전을 보았다.

서유럽에서 중세 이래 기사문학 작품이 많이 쏟아져나온 것도 기사도가 사회생활 속에 얼마나 깊고 넓게 침투하였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