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극장

궁정극장

[ court theatre , 宮廷劇場 ]

요약 귀족연극의 발달에 따라 유럽 각국에서 왕후·귀족이 세운 극장.

르네상스기에 새로 생긴 근대극장은 고대 극장의 부활을 목표로 삼은 인문주의 학자들의 연구에 기인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근거를 뒷받침한 것은 당시 이탈리아의 왕후·귀족들이었다. 뷔첸투어의 올림피코극장(1584)이나 파르마의 파르네제극장(1619) 등도 넓은 뜻에서는 궁정극장의 선구였다. 그러나 조직적인 일정한 극단을 가지고 연극 내용의 향상, 나아가 그 나라 연극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왕후가 건축비뿐만 아니라 다액의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지도와 감독을 담당한 궁정극장은 찰스 2세에 의하여 설립된 런던의 왕립극장(1660), 루이 14세의 명령에 따른 파리의 코메디프랑세즈(1680), 1741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창설한 빈의 궁정극장(1776년 황제 요제프 2세에 의하여 궁정국민극장으로 개칭되고, 1814년 이후 부르크극장이라 불림) 등이 대표적이다.

코메디 프랑세즈와 부르크극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동안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극장예술의 전당으로 우수한 작품·배우·연출가를 배출하였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는 부르크극장을 본보기로 하여 18세기 후반 이후부터 잇달아 베를린·뮌헨은 물론 만하임·바이마르 등 소도시에도 궁정극장이 설립되어 각 지방에서의 연극문화 발전의 중심이 되어 연극사상 큰 역할을 하였다.

궁정이나 국가라는 강력한 권력·권위에 의하여 보호·육성되었기 때문에 예술적 내용의 충실과 좋은 전통의 수립이라는 점에서는 괄목할 만한 업적을 올린 반면, 새로운 경향의 작품·연기·연출에 대해서는 보수적 또는 거부적인 태도를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