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학

국자학

[ 國子學 ]

요약 고려시대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국자감(國子監) 안에 설치되었던 한 과(科).

고려시대 국립학교인 국자감은 992년(성종 11)에 설치되었는데, 이는 신라 시대의 학교인 국학(國學)의 전통을 계승한 성격이 강하다. 초기에는  경학(京學)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으나, 성종 때에 이르러 중국 당(唐)이나 송(宋)의 학교제도를 참고하여 국자감으로 발전하였다.

국자감 안에 학부를 크게 두 부로 분류하여, 유학부(儒學部)와 기술학부(技術學部)로 나누었다. 다시 유학부에는 전공에 따라, 국자학(國子學)·대학(大學)·사문학(四門學)을 설치하였고, 기술학부에는 율학(律學)·산학(算學)·서학(書學)을 설치하였다.

국자학은 국자감 안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학과로 상류 귀족층 자제가 다니며, 특혜가 가장 많이 주어지는 학과였다. 국자학에서는 유학관련 교육을 주로 하여 귀족 관료를 양성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교육과정은 <논어>·<효경>을 필수과목으로 하여 1년간 수학하고, 전공 선택과목으로서 <주역>·<주례>·<의례>·<모시(毛詩)> 가운데 한 과목을 선택하여 각각 2년을 이수하고, 다음 선택과목으로 <상서>·<공양전>·<곡량전>은 1년 반, 그 다음 선택과목인 <예기>·<좌전>은 각각 3년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국자학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은 문무관 3품 이상의 상류귀족 자제였다.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은 3품 미만 5품 이상의 중상류 귀족 자제였고, 7품 이상의 자제와 서인(庶人)은 사문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 개의 학과는 전공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신분에 따른 반(班)의 분류였다. 당시의 신분제 사회를 반영하는 학교 체제였다. 교육과정은 모두 유학 중심의 동일한 과정이었고, 다만 개인 선택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이었다. 정원은 최대 각 300인으로 허가되어 있었으나, 이를 다 채우지 못하고 각 학(과) 당 보통 60~70명 정도였다. 학교 교수로서 국자사업박사(國子司業博士), 대학박사(大學博士), 사문박사(四門博士), 조교 등이 있어 강의를 하였고, 그 외에 여러 신분층 출신의 교수 및 운영 관리를 두었다.

귀족 자제들이 대학에 다니는 목적은 주로 과거에 합격하여 국가 관리(공무원)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국자학의 교육 연한은 최장 9년으로 되어 있었으나,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과거에 일찍 합격하면 학업은 그만두어도 되었다. 과거 시험은 본래 3단계 시험을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전국적인 예비시험(향시)을 거쳐 합격자는 국자감에서 실시하는 ‘감시’(監試 2차 시험)를 통과하여야 하고, 그 다음에야 본시험인 과거(科擧)에 응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자감에서 3년 수학한 학생은 향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시를 볼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특히, 국자감 출신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자는 감시도 면제되고 직접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따라서 국자학 출신은 지방 예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국자감에서 실시하는 감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결국 국자학은 고려시대 최고의 귀족학과였다.

참조항목

경사6학, 국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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