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일치운동

교회일치운동

[ ecumenical movement , 敎會一致運動 ]

요약 교파나 교단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교 신도의 일치 결속을 도모하는 세계교회 일치운동.

세계교회운동·교회합동운동이라고도 한다. 원어인 에큐메니칼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umene에 유래한 것으로, 온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삼는다는 ‘세계교회’의 실현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상은 신약성서 이래 그리스도교의 일관된 주장이거니와, 오늘날 에큐메니칼 무브먼트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재일치(再一致)를 첫째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동방정교회(正敎會)나 로마가톨릭교회와의 협력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운동의 구체적인 발단은 1910년 J.R.모트와 J.H.올담의 지도 아래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회의이다. 이 에든버러 회의 이후 3개의 세계회의가 생겨나 이 운동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 하나가 국제선교협의회(IMC)인데, 선교에 있어서 일치협력을 목표로 하여 제1회 회의가 1925년 예루살렘에서, 제2회는 1938년 마드라스에서, 제3회는 1952년 빌링겐에서 열렸다. 또 하나는 ‘생활과 실천(life and work)’에 관한 세계회의이다. 이것은 현대의 현실적 여러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양심적으로 책임을 지기로 할 때 필요하게 되는 협력을 목표로 한 회의이다. 제1회 회의는 1925년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신학문제의 논의를 피해 왔으나 신학문제를 실천문제에서 분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차차 인정하게 되어 마침내 세계교회회의를 조직할 필요성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또 한 가지 들 수 있는 것은,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에 관한 세계회의이다. 이것은 위의 두 세계회의가 회피해 온 신학적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함으로써 본격적인 교회일치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회의는 1927년 처음 로잔에서, 제2회는 1937년 에든버러에서 열려 교회관(敎會觀)·교의·예배·제도·공동성찬(共同聖餐) 등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상과 같은 여러 단계를 거쳐,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제1회 세계교회회의가 열리게 되면서 세계교회협의회(世界敎會協議會:WCC)가 발족하였다. 이것은 위의 ‘생활과 실천’ 회의와 ‘신앙과 직제’ 회의가 통합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제1회 및 1954년 에반스턴에서의 제2회 WCC 대회에는 로마가톨릭 교회·러시아 정교회 등이 참가하지 않았으나, 196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3회 대회에는 소련이나 동유럽 정교회가 참가하였고, 로마가톨릭 교회에서도 옵서버를 보냈으며, 또한 국제선교협의회도 세계교회협의회와 합동하여 교회합동운동의 획기적 진전을 보였다. 한편, 그 해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주요 교파들이 모여 그리스도교 평화회의(平和會議)가 열렸다. 이같은 진전은 인류의 평화에 대한 염원에서 핵무기 반대와 군축문제, 평화공존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힘입은 바가 컸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다른 교파에 대하여 융통성을 보임으로써 성공회의 대주교가 분리된 이래 처음으로 교황과 회견하였고, 1962년의 역사적인 바티칸 공의회에는 세계교회협의회를 비롯하여 미국·소련의 교회대표도 옵서버로서 초청받았다.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구성되어 있고, 장로교·감리교 연합협의회 때부터 따지면 80년 가까운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연합사업 실태로 보아 교회일치의 꿈이 이루어질 날은 요원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