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고흥

[ 高興 ]

요약 백제 근초고왕 때의 학자. 박사(博士)라는 직함을 갖고 《서기(書記)》를 편찬하는 등 유학(儒學)과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질 뿐, 구체적인 행적은 알 수 없다.
출생-사망 ? ~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30년조에는 '옛 기록에 이르기를 백제는 나라를 세운 이래 문자로 일을 기록한 적이 없었는데, 근초고왕대에 이르러 박사인 고흥을 얻게 되니 비로소 서기(書記)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흥이 다른 책에 나온 적이 없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기록이 덧붙여져 있다. 이것이 고흥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므로 학자들의 추정이 분분하다.

고흥이 지닌 박사라는 직함은 흔히 오경박사(五經博士) 혹은 태학박사(太學博士)를 줄여 부른 명칭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오경박사와 태학박사는 중국에서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의 교수를 가리켰으므로 백제도 근초고왕(346∼375년) 때에는 중국처럼 태학을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고 풀이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흥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지만, 그가 고(高)씨이고 유학에 조예가 깊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계 백제 사람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4세기 초엽에 고구려의 공격으로 낙랑군(樂浪郡)이 멸망하자 그 유민의 상당수가 백제로 망명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고흥도 낙랑군이나 대방군(帶方郡) 출신의 학자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