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투

계투

[ 械鬪 ]

요약 중국 전근대(前近代) 사회에서 마을 ·동족집단 상호간에 무기를 가지고 행한 투쟁.

방(幫)과 같은 노동집단 간에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특히 마을 간 계투가 심하였으며, 무기로는 칼 ·창이 많이 사용되었고 후기에는 총까지 동원되었다. 시대적으로는 명(明) ·청(淸) 시대에 화중[華中] ·화난[華南] 지방에서 성행하였다.

이들 지방의 농촌, 특히 동족마을은 폐쇄적 ·배타적 경향이 강하여 전체의 이해에 관계되는 수리(水利) ·지경(地境) ·분묘(墳墓) 등의 다툼에는 무력으로 결판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 중에서도 화난지방의 계투가 유명하여 푸젠성[福建省]의 장저우[漳州] ·취안저우[泉州], 광둥성[廣東省]의 차오저우[潮州] 등이 그 중심지였다.

이들 지역의 마을에서는 산채(山砦) ·보루(堡壘) 등을 구축해놓고 마을사람이나 동족인이 그 집단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을 당연시하여, 계투가 있을 때는 참가할 남자들을 소집하여 종사(宗祠)에서 서약을 하였다.

또 마을이나 동족집단은 계투 중 사망한 자의 유족을 위해 생활을 보장하였으며, 계투의 자금은 족산(族産:族田) ·기부금으로 충당하였고, 해외에 있는 화교(華僑)들도 출신 지역에 계투자금을 송금하였다. 법적으로 계투주모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관헌의 탄압 정도로는 진압되지 않았으며, 그 지방의 유력인사 등의 중재로 조정 ·화해 등이 성립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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