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거지

[ beggar ]

요약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남에게 빌어서 생활하는 사람.

동냥아치 ·비렁뱅이 ·걸인(乞人)이라고도 한다. 걸식자(乞食者)들은 인류사회에 전쟁 ·재해 ·질병 등의 여파로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에서부터 오늘날 풍요한 물질문명을 구가하는 미국사회에 이르기까지 거지는 없어지지 않고 있다. 외침이나 재해 또는 학정(虐政)과 공부(貢賦)로 인한 도망유민(逃亡流民)들은 일정한 거주지나 생업을 버리고 떠돌아 다니기 때문에 큰 사회문제가 되어 왔다. 이들은 생업이 없이 거적이나 바가지 하나를 들고 마을과 산야를 떠돌며 노숙(露宿)하는 물질적 ·정신적 방랑자였다. 대개 거지는 전란이나 재해 등으로 발생하는 일시적 유리걸식자들과 지적장애 ·질병 ·노약 등으로 생활능력이 없어서 얻어 먹는 사람, 선천적인 방랑벽이나 후천적인 나태성 때문에 한번 거지가 된 후 대(代)를 이어 거지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무왕(武王:재위 600∼641)이 거지로 꾸미고 신라에 들어가서 진평왕(眞平王)의 셋째딸 선화공주(善花公主)를 아내로 맞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마를 구워주며 《서동요(薯童謠)》를 지어 부르게 한 것이라든가, 조선 후기 헌종(憲宗) 때 한국 천주교 신도들이 외국 신부(神父)를 밀입국시키기 위하여 거지로 꾸미고 두만강 국경지대로 출입하며 국내 정세를 알려 준 경우도 있다. 이런 거지들은 조선 중기부터 문학작품 속에도 자주 등장한다. 광해군(光海君) 때 흉년으로 생계를 잃은 떼거지들의 참상을 조위한(趙緯韓)이 가사(歌辭) 《유민탄(流民歎)》으로 읊었는가 하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거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광문자전(廣文者傳)》을 쓰기도 하였다. 학정이나 재해로 집을 떠난 유민들 중에서 힘센 자는 도둑이 되고, 기운이 약한 자는 거지가 되었다. 그들은 수십 또는 수백 명씩 집단을 이루어 구걸행각을 하다가 나중에는 ‘모두먹기패’가 되어 메뚜기떼처럼 식량이 남아 있는 이웃 고을에 들어가 그 고을의 식량을 다 먹어버린다. 그러면 ‘모두먹기패’에게 식량을 뺏긴 그 이웃 고을도 함께 거지가 되어 또 다른 이웃 고을로 ‘모두먹기패’가 되어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혹심한 흉년이 지나간 후에도 거지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허무와 무관심, 방관, 선천적인 낙천성에다가 일종의 멋까지 생겨 그들은 몇 사람씩 소집단을 이룬 각설이패가 되어 장마당을 돌며 《장타령》을 불렀다. 그 모습을 조선 후기의 판소리작가 신재효(申在孝)는 《가루지기타령》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영남(嶺南)돌림이라 영남장만 세것다. 떨얼, 떨 돌아왔소. 각설이라 역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한 놈은 옆에 서서 입장구 갱갱 치고, 한 놈은 옆에 서서 살만 남은 헌 부채로 뒤꼭지를 탁탁 치며 두 다리를 벋디디고 허리짓 고개짓, 잘한다 잘한다.” 점차 거지들도 남의 돈이나 음식을 거저 얻어 먹지 않고 풍각(風角)을 팔기 시작하였으며, 또 절간에서 마을이나 장터로 내려온 걸승(乞僧)들은 목탁을 치며 복을 빌어 주고 밥을 빌어 먹었다.

거지행각과 비슷한 부류로 솔장수패 ·솟대잡이패 ·쳉이장수패 ·용천뱅이 ·문둥이패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산과 들의 나무나 풀뿌리를 캐어 만든 가구(家具)와 말총 제품 등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팔아 밥을 얻어 먹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을의 정착민들과 함께 섞여 살지 못하고 제삿집이나 혼사마당으로 떠도는 거지들은 운수간(雲水間)을 헤매다가 다리 밑이나 상여집에서 동사(凍死) ·병사하는 수가 허다하였고, 이들은 근대 이후 도시와 산업사회의 성장, 식민지 통치 등 가혹한 사회변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다수가 낙오자가 되었다. 1927년 1월 경북의 경우 2,229명, 경남은 1,742명, 부산 시내에만 126명의 거지들이 배회하고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일제 총독부 당국은 도지사회의(道知事會議)에 ‘거지문제’를 상정하였고, 1928년 7월 서울에서만 800여 명의 거지를 수용하여 부산 축항공사장에 강제로 투입한 일이 있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거지들은 아무런 보호시설이나 수용대책이 없이 방치되어 오다가 구세군(救世軍) ·외국인 선교사 ·불교단체 등이 앞장서서 작으나마 구호사업을 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8 ·15광복을 맞고, 다시 6 ·25전쟁을 치르면서 전쟁고아가 된 거지떼가 급증하였다. 현재는 각종 사회단체의 구호시설이 다소 완비되어 전란으로 인한 일시적 유리걸식자들은 사라졌으나, 질병 ·노약 ·지적장애 등에 의한 걸식자들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 점점 늘어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참조항목

각설이타령

역참조항목

서동요, 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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